김호성 전 행정부지사·수필가·행정동우회장

추석 때가 되면 객지에 나돌던 식구들도 다 고향에 모인다. 올 추석에도 예외 없이 상해에서 대구에서 서울에서 손자들 데리고 고향을 찾아 왔다. 제각기 삶의 다른 이야기로 꽃을 피웠지만 한결같은 것은 지난 여름 폭염 이야기다. 

지난 여름 폭염은 실로 장난이 아니었다. 8월 1일 대구지역의 기온은 섭씨 41도였다. 70년만의 슈퍼 폭염을 기록했다. 폭염이 한반도를 불덩어리로 몰아갔다. 

폭염에 농민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논밭이 갈라터지고 채소밭은 타버렸다. 농민들은 실의에 빠지고 과일 채소 값은 천정부지다. 사람 사는 어려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절의 변화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 저녁으로 공기가 많이 차가워졌다. 

요란을 떨던 매미와 베짱이 소리는 멈췄고 그 대신 여치, 귀뚜라미 울음소리로 가을밤의 깊이를 더해 간다. 이것뿐인가 코스모스길 황금들판, 높은 하늘, 단풍, 기러기, 억새 밭 산굼부리, 한라산, 오름, 단풍 등이 가을 정취를 뽐낸다.  어느 시인의 가을 단풍을 노래하면서  "여름 버티려니 너는 이뻐 마땅하다". 감귤농사를 짓는 친구도 한마디 거들었다. 나무도 폭염의 시련을 겪어야 열매가 탱글탱글하고 맛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철학을 사유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가을 단상은 사뭇 다르다. 이들에게는 가을이 오면 '삭막, 고독, 죽음, 우울증, 무의미, 자유'를 인간 실존의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다. 인간 여정을 쉬운 말로 표현하면 생로병사라고 한다. 생(生)을 제외하면 노병사(老 病 死)가 4분의 3으로 인생은 괴로움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그 괴로움 속에 또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는 희망으로 은연중 동의하면서 살아온 것이 아닌가. 

아니면 죽는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인가. 어쩔 수 없이 가을 노래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갈색추억, 낙엽따리 가버린 사랑, 바람 바람 바람, 가을 편지, 가을을 남기고간 사랑, 가을 연인, 대부분이 가라앉고 쓸쓸한 노래다. 

내 나이만큼 75년째 맞는 한가위 달은 변한 것이 없다.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달 속에 계수나무 옥도끼로 찍어 내어 금도끼로 다듬어 초가삼간 집을 짓고…" 우리가 어렸을 적 누구나마 좋아했던 동요다. 그러나 동요 속에 달도 이제는 낭만의 달이 아니다. 달 여행객을 모집한 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1호로 선정된 여행객은 일본의 억만장자 기업인 패션 쇼핑몰 사이트 '조조타운(ZOZOTOWN)'의 마에자와 사장이다. 아티스트 5~6명을 데리고 간다고 한다. 지난 1969년 7월 16일 닐 암스트롱이  처음으로 달에 발을 디디면서 '한 인간에게는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고 한 그의 말이 실현된 것이다.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는 교훈 속에 이제 인공지능(AI)시대 제4차 산업혁명이 시작됐다. 삶의 순간순간이 버겁고 피곤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하는 세상이라 오래 살고 볼 노릇이다. 가을에는 파란 하늘을 쳐다보는 재미도 있지 않은가. 다람쥐는 일생을 도토리 모으는 재미로 산다고 한다. 그러나 애써 여기저기 감춰 놓은 곳을 모른다고 한다. 일본 치매노인 수만명도 마치 다람쥐 신세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일생동안 모은 돈을 어느 은행에 얼마를 예금한지 모른다고 하니 다람쥐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무려 1400조라고 한다. 몇 마디 격언모음으로 가을 단상을 마칠까 한다. 첫째 하느님이 부를 때는 당신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 둘째 수의(壽衣)에는 호주머니가 달려있지 않다. 셋째 우리는 벌거숭이로 이 세상에 왔으니 벌거숭이로 이 세상을 떠나리라. 이별의 시간이 왔다. 나는 죽고 너는 살 뿐이지만 언젠 는 같은 길을 간다. 나무는 버려야 할 것을 아는 순간부터 아름답게 불탄다고 하는 어느 시인의 말이 초가을 의미를 더 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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