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숙 화가·논설위원

인디언 아라파호족은 11월을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한다. 풍요로운 10월과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사이에 끼어 존재감 없어 보이는 11월에 대한 애정이 깃들어 보인다. 

요즘에는 1년 12달 모두가 분주한 듯 도내 곳곳에서는 축제도 한창이다. '제주 축제 11월'을 검색하니 감귤박람회를 비롯 16개나 떴다. 축제라는 명칭을 내걸지 않아서 그런지 검색망에 뜨지는 않았지만 올해로 24회째를 맞는 제주미술제도 얼마 전에 열렸다. 

지난 1991년 제주미술인들의 축제가 되고자 제주를 기반으로 한 미술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를 시작한 제주미술제는 2016년 23회를 이어오는 동안 변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들이 작품 한 점 출품하면 되는 전시 위주의 행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었다. 간혹 출품작가로 참여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제주미술제가 제주미술을 테마로 하는 신바람 나는 축제의 장이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이 같은 생각들이 쌓여서인지 지난해를 모색과 준비의 기간으로 삼아 올해 재탄생한 제주미술제는 행사의 슬로건으로 '제미 재미 잼잼'을 내걸어 그동안의 행사와 차별화를 예고했다. 오픈행사에서 새로운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짤막한 개회식에 이어 영상과 디제잉에 맞춰 진행된 문예회관 야외마당에서의 파티는 그동안의 행사와는 확연히 달랐다. 곁에 있던 한 작가는 "문예회관 앞마당이 이렇게 멋진 공간이 되기는 처음인 것 같다"라고 했다. 이름하여 잼잼나이트는 흥겨운 음악과 영상, 요기를 할 만한 음식과 음료들이 준비돼 오랜만에 보는 미술인들끼리 담소도 나누고 미술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었다. 

문예회관의 메인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제1전시실에는 작품들이 들어선 게 아니라 카페와 라운지를 만들어 미술인들과 관람객, 즉 사람이 주인이 되는 공간을 연출했다. 그곳에는 차를 마시면서 제주작가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할 수 있도록 테블릿 노트를 마련했다. 이어 참여작가들의 작품을 엽서로 제작해 관람객이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또 아트상품을 제작해 판매하기도 했고, 작가와 큐레이터, 평론가 등의 멘토를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의 장소로도 이용됐다. 
제2전시실에서는 200여점의 회화작품을 벽면에 가득 채워 회와의 다양성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색다른 공간을 만들었다. 또 안쪽 방에서는 영상작가들의 작품을 대형 스크린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3전시실은 입체와 공예, 서예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았고 이 밖에도 작가의 작업실을 탐방하는 오픈스튜디오도 진행해 다양한 체험거리를 모색했다. 제주도립미술관에서의 제주작가소장전과 제주문화예술재단 소속의 전시공간 이아에서 제주의 풍경을 테마로 한 기획전시도 함께 이루어져 민관의 협업체계도 마련하는 등 고민의 흔적들이 여기저기에서 느낄 수 있게 했다. 

올해 제주미술제는 말 그대로 제주 미술 축제의 장으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다만 새로운 변화 속에 일반인들의 호응도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아 보인다. 도내의 모든 갤러리나 문화공간들이 전시나 미술 관련 행사를 하고, 미술서적, 미술재료도 선보이고, 미술인이든 비 미술인이든 미술과 관련한 수다 또는 토론이 어디서든 벌어지는 그런 광경이 펼쳐지면 어떨까. 지난해 처음으로 개최된 제주비엔날레가 진행상의 문제로 기로에 서긴 했지만 정상적으로 운영이 재개된다면 지역성을 살린 제주미술제와 국제성을 살린 제주비엔날레가 격년으로 열리게 돼 매년 제주는 미술축제의 섬이 될 것이다. 

축제의 시작은 당사자들이 즐겁고 흥이 나야 하고 당사자들이 신이 났을 때 주변에서 호기심을 가지고 모여들어 함께 즐기는 것이다. 올해의 미술제가 변화, 새로움, 재미 등에 방점을 찍었다면 다음에는 모두, 함께, 넓게에 방점을 찍어 미술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함께 호응하고 신나는 모두의 축제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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