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병찬 서예가 시인·논설위원

예로부터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그 시대의 지도자가 어떤 인물인가에 달려 있었다. 우리에게도 자랑스런 성군으로 길이 남는 임금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잊혀 지지 않는 임금을 들라면 세종대왕이다. 

올해는 세종대왕이 임금 자리에 오른지 600돌이 되는 해다. 어느덧 이 뜻 깊은 해가 저물어가고 있음에 새삼 옛 성군이신 세종대왕을 기리게 함은 이 나라의 부국안녕을 일궈내려고 노력하는 근현대의 지도자상에서 말해주는 이유라 하겠다. 

세종대왕은 1418년 6월 예기치 않았던 왕세자의 자리에 책봉된데 이어 2개월 후인 8월에는 조선 제4대 임금의 자리에 까지 오르게 됨으로써 갑작스런 왕위의 책무감과 부왕인 태종과 형인 양녕대군에 대한 부담이 컸었겠지만 호학의 군주로써 성정을 베풀기 시작한 성왕으로의 자리를 굳히게 되는 해가 됐다. 

이 때 세종의 나이는 22세로 어린 나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갑자기 왕위에 즉위하는 바람에 준비가 부족했기에 위로는 상왕의 뜻을 받들며 자신을 최대한 낮춰 형인 양녕대군을 잘 보살핌에 게을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래로는 신하들의 의견을 존중해 토론하기를 좋아하고 인재를 뽑아 쓰는 성군으로의 위치에서 32년간 재위하면서 백성을 위하는 애민정신 위민정신을 바탕으로 농업, 국방, 과학, 문화예술, 그리고 우리의 눈과 귀와 입을 열어준 '한글'을 직접 창제했으니 60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에게도 성군으로의 자리매김이 뚜렷이 남겨져 왔음을 실감케 한다.

세종대왕의 업적이 기록돼 있는 세종실록에는 유난히 '이(異) 즉 다르다'와 '시(試) 즉 실험하다'라는 글자가 많이 나타나 있다. 예를 들면 농사직설을 펴낼 때 '중국 농사법과 조선 농사법이 다르다'고 했고, 향약집성방을 펴낼 때도 '중국 의학과 조선 의학이 다르다'고 했으며, '중국 하늘의 별과 조선 하늘의 별이 다르다'고 해 조선 고유의 역법인 칠정산내외편을 이순지와 함께 완성함과 아울러 조선의 자주적인 천문대 간의대를 만들어 세계적인 천문학을 이뤘으며 지금도 현대의 국제천문학계가 인정한 '세종별'이 하늘을 돌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 외에도 노비출신인 장영실을 등용해 해시계, 물시계, 수표, 측우기 등을 발명하게 함과, 종4품까지 하사해 장영실의 끈기와 철저한 장인정신을 무한히 발휘할 수 있게 했던 점, 또 '인재를 얻어 자리를 맡겼으면 의심하지 말아야 하고 의심이 있으면 맡기지 말아야 한다'라는 어록과 같이 장영실을 믿고 일하게 해 과학문명국으로 발전하게 한 일이겠다. 

특히 오늘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사용하고 있는 한글 즉 훈민정음을 창제함에 있어서도 여러 신하들의 강도 높은 반대도 뿌리치고 오로지 '백성을 위하여'라는 일념으로 쉬운 글, 편한 우리글을 창제했으니 만약 세종대왕이 왕으로 즉위하지 않았다면 우리민족은 글이 없는 민족, 그래서 우리말을 문자로 기록하기 불편함 속에서 중국의 글을 빌려 쓰는 문화 종속국으로 남아 있을 것이 분명하다. 

더욱이 자랑스런 일은 지난 10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2회 세계문자 올림픽대회에서 한글이 금메달을 획득한 일이나, 오늘날 유네스코가 제정한 '세종대왕 문맹퇴치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시행하고 있는 일, 그리고 누구나 손전화기를 들고 멀리 있는 친구와 서로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쉽고 빠르게 글자판을 치고 있는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세종대왕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 사람뿐만이 아니리라.

동서고금의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살펴봐도 세종대왕보다 더 자랑할 만한 임금은 없다. 조선건국의 새 터전에서도 어렸을 적부터 책읽기를 좋아하고 총명했다고 전해지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세종 자신의 넓고 깊은 학식을 국가 경영에 직접 도입하는 지도자로서의 인품이 남달랐었다는 점이 민본정치를 펼쳤던 성군의 모습으로 역사에 길이 남게 하는 바탕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되뇌이게 한다.

세종대왕즉위 600돌을 기념하는 창극단이 전국 순회공연을 하는 중에 오는 12월 23일는 제주에서도 막을 올린다니 다시 한 번 세종대왕을 기리는 시간을 가져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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