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석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제주지역본부 본부장

소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의 잠수함 근무 시절의 경험담을 토대로 잠수함의 토끼라는 일화를 들려줬다. 

이 일화에 의하면 당시의 잠수함은 산소측정기가 없어 산소 부족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토끼를 잠수함에서 길렀다. 이 때 토끼의 눈과 귀를 세밀히 관찰하면서 토끼가 졸면 산소가 부족하다고 해석해 그 때마다 수면 위로 떠올라 잠수함의 산소를 공급받게 했다. 

이런 점에서 작가는 사회 내에 가장 민감한 자로 사회를 감시하는 작가의 사명을 '잠수함의 토끼'와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했다. 즉 이상 징후와 위기의 경고음을 아무도 모를 때 그것을 가장 먼저 감지해 알리는 사람이 바로 작가여야 한다. 하지만 필자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민감하고 연약한 존재로서 우리가 살피고 돌봐야 하는 어린이가 '잠수함의 토끼'라고 생각한다. 

어떤 자극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 앞으로 닥칠 큰 위험을 알려주는 바로미터를 잠수함의 토끼나 탄광의 카나리아라고 부르곤 한다. 민감한 자는 그만큼 약하기도 하다. 공기가 탁해지는 것을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토끼는 약하고 가장 먼저 죽는다. 

사회가 부패하면 먼저 고통받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어린이를 비롯해 장애인과 노인 등이 고통 받는다면 어느 경우에서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잠수함의 토끼가 주는 위험한 신호일 것이다. 

사회지표로서 아동문제는 심각한 수준에 처해 있다. 아동학대로 해마다 많은 아동이 사망하고 유기와 납치 그리고 아동성폭력 등 강력범죄의 최대 피해자로 아동이 늘 문제되고 있다. 국가와 어른들은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라는 말로 어린이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문제해결을 위한 실효성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아동들에게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제공할 수 있는 그런 획기적인 정책은 아직 요원한 것이 사실이다. 

어린이가 살기 좋은 사회는 어른도 살기 좋은 사회일 것이다. 미래주역인 어린이가 불행한 사회에서 과연 밝은 미래가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어린이들이 고통받는 것을 외면하고 방치한다면 과연 이들이 커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밝은 미래를 열수 있겠는가. 토끼의 가쁜 숨소리를 주목하지 못하고 살피지 않을 때 이후에 일어날 끔직한 일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토끼는 산소부족을 경고하고 다가오는 위기를 경고하는 고마운 존재다. 이런 고마운 토끼가 고통받고 죽어가고 있다면 우리사회가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눈치 채야 한다. 

지난 11월 20일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이 국제연합(UN)에서 채택된 날을 기념한 '세계 어린이의 날'이다. 이 날은 모든 아동의 권리를 규정한 최초의 국제적 협약이다. 

다시금 세계 어린이의 날을 기억하는 시점에서 우리 주변의 어린이들이 보다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더욱 살피고 보호해야 할 것이다. 잠수함이라는 우리 사회가 안전하게 잘 운행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위험성을 가장 잘 알아채고 경고음을 내어주는 어린이를 세심하게 잘 살피고 이들이 잘 성장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그러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건강한 사회는 사회적 약자를 우선적으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이들을 위한 정책을 최우선적으로 펼치는 사회다. 지금부터라도 국가와 어른들은 어린이들이 고통 받고 신음하는 소리는 물론이거니와 이들의 작은 소리와 신호에도 귀 기울어야 한다. 국가와 어른들은 이 땅의 어린이들을 위해, 앞으로 태어날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 책임있는 역할을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말로만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 국가의 미래라는 말은 이제 하지 말자. 더 이상 고통 받는 토끼를 외면하면 모두가 위험할 수 있음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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