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주 사단법인 제주올레 상임이사·논설위원

지난 달, 인도네시아 해변에 떠밀려 온 고래 주검의 뱃속에서 무려 5.9㎏이나 되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나왔다는 뉴스를 보고 놀라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제주도 역시 전체 해양 쓰레기 가운데 플라스틱 쓰레기 비중이 47.2%로 매우 높다. 제주환경운동연합과 제주자원순환사회연대가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해안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해안 2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7 국가해안쓰레기모니터링' 결과다. 플라스틱 문제가 해양 생태계 교란을 넘어 인간의 건강까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면서 많은 이들이 일회용품 줄이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제주도에서도 빨대나 일회용 컵 대신에 텀블러를 사용하고 에코백을 들고 장을 보러 가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제주도는 2년 전부터 분리수거를 잘하는 것만으로도 쓰레기 양을 줄일 수 있다며 재활용품 요일별 배출제를 시행해 왔다. 그러나 아직은 그 성적표가 초라하다. 재활용률은 2016년 53.4%, 2017년 56.7%, 2018년 현재 57.3%로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쳤다. 그 원인을 놓고 각 가정에서 분리배출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15만명 안팎에 이르는 국내·외 관광객에 대한 홍보가 부족했다 등의 진단이 나오고 있다. 

제주도가 추진하는 분리배출제나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2010년부터 해온 클린올레처럼 시민들의 인식과 행동을 바꾸는 정책이나 규칙은 그 성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클린올레는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고 외치기보다 '쓰레기를 주워오는 사람을 칭찬해 쓰레기를 줄여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물론 10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해오다 보니 캠페인 효과는 적지 않다. 올레꾼과 자원봉사자들이 매년 줍는 쓰레기 양이 행정에서 미화원 수십명을 고용해 1년 내내 쓰레기를 치운 양에 버금간다는 통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큰 효과는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 변화다. 한 번이라도 쓰레기를 주워 본 사람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육지에 사는 올레꾼 가운데는 매달 둘째주 토요일 제주올레 자원봉사자들이 주최하는 '클린올레 캠페인'에 참여하기 위해 비행기 티켓을 끊는 이가 많다. 여행자가 길을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장면을 본 제주도민은 '육지에서 와서까지 쓰레기를 줍는데…' 하며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마련이다. 

올 봄, 제주올레가 수협중앙회·환경재단과 함께 '클린바당 캠페인'을 시작한 이유도 같다. 세 기관 모두 해녀, 선주 등 바다를 생계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이야말로 바다 쓰레기를 치워봐야 쓰레기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할 수 있다는 데 뜻을 모았다. 배 위에서 함부로 던져버린 쓰레기와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스티로폼 같은 어구들이 바다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있음을 백번 이야기하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직접 수거해보게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생활쓰레기 못지않게 많은 양을 차지하는 해양 쓰레기가 어구들이다. 매달 수협 전국 지부에서 교대로 제주에 내려와 바다 쓰레기를 치웠고, 그 과정에서 줍는 것보다 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고 돌아가고 있다. 클린바당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다 보면, 바다를 생계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도 인식과 행동이 바뀌어 쓰레기 양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소비자)의 인식과 행동만 바꾸면 되는 것일까? 생산자와 판매자들의 인식과 행동을 바꾸기 위한 정책도 병행해야 한다. 예컨대 대형마트나 시장에서 플라스틱 포장지를 아예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정책은 왜 나오지 않는 것일까. 에코백을 들고 시장이나 대형마트를 찾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그 백에 담기는 물건들은 비닐봉지나 플라스틱에 담긴 것들이 아닌가. 선진국은 물론 인도나 네팔과 같은 개발도상국들도 플라스틱 포장지 추방 정책을 시행하는 추세다. 제주에서도 대형마트의 종이 박스 공급을 제한하는 것보다 비닐과 플라스틱 포장을 금지하는 것이 쓰레기 배출량을 더 현저하게 줄이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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