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석 이사 논설위원·서귀포지사장

"사공 많으면 배가 산으로"

민선7기 원희룡 제주도정이 제주특별자치도 행정체제 개편 모형으로 행정시장 직선제를 채택, 도의회에 동의를 요청하면서 도민사회의 논쟁이 치열하다. 

도가 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권고한 행정시장 직선제를 수용한 반면 일부 도의원과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기초자치단체 부활, 읍면동장 직선제를 제각각 요구해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도는 지난 6일 시장은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되, 기초의회는 구성하지 않는 행정시장 직선제 동의안을 도의회에 제출했다. 도는 행정시장 직선제가 도의회에서 원안 통과되면 내년 중 주민 투표와 정부·국회의 제주특별법 개정 등 관련 절차를 마무리, 빠르면 오는 2022년 민선8기 지방선거에 적용하는 로드맵도 함께 제시했다.  

행정시장 직선제를 내용으로 한 행정체제 개편이 시동을 걸었지만 도민사회의 합의와 정부·국회 설득 등 해결 과제는 산적하다. 

무엇보다도 도민의 대의기관인 도의회의 행정시장 직선제 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제주특별법에 행정시장 직선제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도의원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수이지만 일부 의원들이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주장하고 있어 내부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도·도의회를 압박하는 시민사회단체 진영 역시 의견이 엇갈려 걱정스럽다. 시민사회단체 진영은 행정체제 개편 모델로 기초자치단체 부활안과 제주형 읍면동자치안(읍면동장 직선제)을 주장하고 있어 향후 주민투표에 부칠 도민사회의 합의안 마련도 장담할 수 없다. 

이처럼 제주특별자치도 행정체제 개편 방향에 대해 '백가쟁명'식 주장이 제기되자 소모적 논쟁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행정시장 직선제든, 기초자치단체 부활이든, 읍면동장 직선제든 모두가 '제왕적 제주특별자치도지사'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것임에도 도민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면 소모적 논쟁만 반복하기 때문이다.  

특히 도민을 대표하는 도의회가 도민들의 총의를 모으지 못할 경우 민선5기 우근민 도정처럼 논쟁만 거듭하다가 시간을 허비할 수 있다. 2013년 9월 당시만 해도 도의회는 우 도정이 제출한 행정시장 직선제 동의안에 대해 "차기 도정으로 행정체제 개편을 미뤄야 한다"고 부결하면서도 기초단체 부활이나 읍면동장 직선제 등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무책임 정치라는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행정체제 개편에 따른 막대한 예산·시간을 소모하고, 도민 에너지만 고갈시키는 후유증까지 초래했다.  

행정체제 개편과 관련해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백가쟁명식 논쟁도 그렇지만 행정시장 직선제의 장·단점을 살펴보는 논의가 생략돼 아쉽다. 주민들이 선출한 시장에게 부여할 예산·인사·조직 등 구체적인 권한과 범위, 주민 밀착 서비스 제공 등 행정 민주성 향상을 위한 읍·면·동의 기능과 역할, 도지사와 시장간 갈등 발생때 해결책 등 세부적인 내용은 다뤄지지 않아 자칫 '알맹이 없는 행정체제 개편'도 우려되고 있다. 

현행 제주시와 서귀포시 2개 행정시만 해도 지방세 징수액을 자체 예산으로 편성할 세입권이 없는 탓에 매년 도 본청에서 배분하는 '실링'에 의존해 살림살이를 꾸리고 있고, 그 결과 주민들의 민원해결 요청에 신속히 대응치 못하는 실정이다. 

의회가 도민합의 이끌어야

이에따라 도의회가 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행정시장 직선제의 장·단점을 도민들에게 구체적으로 알려 합의를 이끌어내는 의정역량 발휘가 필수다. 직선 시장의 권한을 구체적으로 제시토록 집행부를 견제·감시해야 주민복리 증진에 기여할 행정체제 개편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행정시장 직선제가 현재처럼 주민서비스 향상의 본래 취지 보다 공직사회 권한 강화에 초점을 맞추면 행정체제 개편의 의미가 퇴색될뿐더러 도민 합의도 물 건너갈 수 있다. 백가쟁명식 행정체제 개편 논쟁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도의회의 성숙한 리더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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