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총선 시민연대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이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슬로건과 함께 성난 유권자의 그림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대부분의 홈페이지는 한 번 보고 지나쳐 버리기 십상인데, 웬걸 이 홈페이지 앞에서는 그렇게 되질 않는다. 이 홈페이지에 내걸린 슬로건 속의, '우리 시민들은 지금까지 많이 참아 왔으나 이제는 그것이 한계에 도달했으므로 앞으로 치러질 2000년 총선에서는 시민들의 힘으로 과거의 구태를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는 단호한 의지가 결코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당장 몇 가지에 대해서만이라도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 '몇 가지'는, 정말 우리는 이제까지 참아왔던 것인가, 혹시 우리는 이제까지 모든 것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그저 묵묵히 수용하고 묵인했거나 무력해질 정도로 순치되었던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등인데, 현실 상황을 주체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하나의 물음이 다른 물음을 낳는, 이러한 식의 물음들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제도는 사람들이 만든다. 좋은 제도를 만든 주체도 사람들이고 나쁜 제도를 만든 주체도 역시 사람들이다. 제도를 만든 사람들에게는 좋은 제도가 규정하고 있는 바를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지켜야 할 의무와, 나쁜 제도임이 확인될 경우에 그 제도를 고쳐야 할 의무가 동시에 부여되어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2000년 총선 시민연대에서 정한 공천 가이드 라인, 즉 부패·선거법 위반·반민주, 반인권 전력·의정 활동의 부실함·법안과 정책에 대한 반개혁적 태도·반의회적, 반유권적 행위·병역 비리와 공약 불이행 등은 명단에 포함된 66명의 '공천 반대자'들이 이러한 의무를 소홀히 했거나 전혀 지키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음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활동을 벌이면서 가장 주목하는 대상은, 활동 방향으로 잡고 있는 '낙천·낙선 운동'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선거의 출마 예상자들이다. 앞으로 전개될 우리 나라 정치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그들이 일차적인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들의 상당수가 국회의원으로 신분이 바뀔 때, 임기 동안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들은 좋은 제도나 나쁜 제도를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당하게 내세운 공약을 성실히 이행할 수도 있고, 아무렇게나 팽개쳐 버릴 수도 있다. 그들은 국민을 호령할 수도 있고, 국민의 진정한 대표자가 될 수도 있다. 그들은 좋은 법률안을 입안하기 위하여 밤을 새우며 연구할 수도 있고, 국민의 세금으로 국외에서 은밀하게 호화스러운 여행을 즐길 수도 있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곧장 사람을 선택하는 일의 중요성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거에 우리 나라에서 실시되었던 선거만을 놓고 보더라도 사람들이 만든 제도 자체를 그 제도에 참여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중요시한 경우는 부지기수로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시민단체들의 활동에 의해 바뀌어 가고 있다.

제도 자체보다 그 제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더 중시하는 시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의 직접적인 요인이, 의무를 소홀히 했거나 전혀 지키지 않은 많은 국회의원들에게 있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낙천·낙선 운동'의 당위성은 여기에서도 도출된다.<김병택·제주대교수·문학평론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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