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편집부장 대우

"그 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82년생 김지영」 중)

1982년생 김지영씨는 우리 나이로 서른네 살의 평범한 주부다.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홍보대행사에서 근무했다. 3년전 세 살 많은 남편과 결혼했고 출산과 동시에 퇴사했다. 서울 변두리의 작은 아파트에 세 식구가 전세로 거주하고 있다. 30대 경력단절여성 김지영씨의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016년 출간된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얼마전 누적 판매 100만부를 기록했다. 이 책은 지난 8일 일본에서도 출간됐으며 빠른 판매속도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별로 특별할 것 없는 한 여성의 삶을 통해 여성이 학교와 직장에서 받는 성차별, 고용시장에서의 불평등, '독박 육아'를 둘러싼 문제점 등을 사회구조적 모순과 연결해 보여준다. 최근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인 남녀 갈등과 맞물려 일명 '김지영 현상'이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지난해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등 정치인들이 책을 선물하면서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미투 운동'과 궤를 함께 했고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아이돌봄지원법 개정안 등 일명 '김지영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소설이 화제가 될수록 이를 둘러싼 남녀간의 논쟁도 커지고 있다. 일부 남성 사이에서는 「82년생 김지영」이 지나치게 여성을 피해자화해 역차별을 야기한다는 반발이 일었다. 가수 아이린은 책을 언급했다가 남성 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고 영화 제작과 주연 배우 결정 소식에 이를 막아 달라는 국민 청원이 올라왔다. '김지영'을 둘러싼 논쟁은 온라인에서 남성 버전인 '92년생 김지훈' 등이 생겨나는 등 심각한 양상으로 번졌다. 

물론 모든 여성들이 이 소설에 100% 공감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남성들이 비판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김지영 현상'은 남성 뿐만 아니라 여성들조차 당연하게 생각하던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흔들며 모두에게 우리 사회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또 다음 세대가 좀 더 나은 삶을 살기위해서는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목소리가 반영된 더 많은 '김지영'이 나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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