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더부살이가 아닌 더부살이고사리

낙엽수가 주를 이루는 용암 숲에 가면 더부살이고사리를 볼 수 있다. 서광, 청수, 안덕곶자왈에서 비교적 흔한데 상록수로 되어 있는 숲에서도 비교적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는 많이 자란다. 이런 곳은 주변의 바위나 함께 자라는 식물들의 자람세만 보더라도 뭔가 건조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높이는 보통 50㎝ 내외, 잘 자란 것은 80㎝에 달하는 것도 있다. 잎몸의 나비는 20~30㎝ 정도다. 잎자루나 잎의 뒷면에는 비늘조각이 붙어 있지만 표면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 반짝이는 빛깔을 가지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아주 아름답게 느끼기도 한다. 

그래도 더부살이고사리하면 뭔가 이색적이고 신비롭다는 느낌을 받는 게 보통이다. 군락을 형성하되 심하게 밀집하지 않고, 어디선가 본 듯한 고사라이의 일종이긴 한데 관찰할수록 신기하게 생겼다. 이 식물이 번성한 용암 숲은 그 지형의 이질감과 함께 양치식물이 주는 원시성을 함께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더부살이고사리의 '더부살이'란 무슨 뜻일까. 왜 이 고사리는 더부살이고사리일까. 표준국어사전을 보면 '① 남의 집에서 먹고 자면서 일을 해 주고 삯을 받는 일. 또는 그런 사람. 더부살이 신세, ② 남에게 얹혀사는 일. 삼촌 댁에서 더부살이로 지내는 것도 한두 달이지 더 이상은 못 있겠어요. ③ 나무나 풀에 기생하는 식물. 더부살이 식물', 이렇게 나온다. 식물에 관련한 단어이므로 그 중에서 세 번째에 해당할 것이다. 

이 식물은 기생식물일까? 기생생활을 영위하는 식물 중에는 엽록소를 가지고 다른 식물에 기생하면서 영양물질을 흡수하는 식물들이 있는가하면 엽록소를 형성하지 않고 다른 식물에 흡착근을 박아 물과 영양분 일체를 숙주로부터 공급받아 생활하는 식물들도 있다. 전자를 반기생이라하고 후자를 완전기생이라고 한다. 완전기생을 하는 종으로는 사철쑥의 뿌리에 기생하는 초종용, 호흡근을 내어 다른 식물에서 영양을 취하는 새삼을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가지더부살이, 오리나무더부살이, 압록더부살이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완전기생식물이다.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기생 종으로는 참나무겨우살이, 겨우살이, 동백나무겨우살이를 들 수 있다. 그러니 녹색식물로서 기생하는 식물을 우리말로는 보통 '겨우살이', 엽록소가 없는 완전기생식물을 '더부살이'라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국내에서 양치식물이 기생하는 경우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도 전 지구적으로도 기생하는 양치식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뜯어봐도 더부살이고사리에서는 타 식물에 기생하는 징후를 발견할 수 없다.

다만 다른 양치식물에서 흔치 않은 독특한 기관이 있음을 보게 된다. 바로 포복지 또는 눈줄기라고 하는 것이다. 이 양치식물은 다소 이색적이긴 해도 다른 고사리와 그다지 달라 보이는 구석이 없는데 이런 이상하게 생긴 줄기가 하나 더 있는 것이다. 이 기관을 통하여 각 개체간이 연결되어 있는데 어떤 경우에는 어느 개체가 먼저 나왔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개체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포복지를 내어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것이 있는가 하면 이 포복지가 땅에 닿아 새로운 개체가 완전히 형성된 것도 볼 수 있다. 이런 개체간의 연결이 마치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형태로 '더불어 같이 살아간다'는 뜻으로 더부살이고사리라고 하게 된 것은 아닐까? 

이런 형태적 특성으로 해서 이름도 다양하게 갖게 됐다. 정식명칭은 '더부살이고사리'인데 북한에서는 '싹고사리' 또는 '새끼줄고사리'라고 한다. 이러한 이름도 이 식물의 번식습성과 형태적적 특징을 잘 표현한 명칭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더부살이고사리는 곶자왈, 특히 서부지역의 건조한 용암 숲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돋보이게 하는 더부살이가 아닌 더부살이고사리라 할 수 있다. 

이 더부살이고사리는 중국과 일본의 남부지방에 분포하고 국내에서는 전남의 일부지방을 제외하면 제주도 용암 숲에만 특징적으로 자란다.  

식물의 살아남기, 스톨론 번식

고등식물은 흔히 씨로 번식한다. 다소 원시적 형태와 생활환을 갖는 양치식물에서는 이 씨 대신 포자로 번식한다. 이런 번식형태는 자와 웅이라고 하는 두 가지 형태의 생식 상대자가 반반씩 유전물질을 공여하기 때문에 유성번식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방식의 번식방법도 있다. 성적 생식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 번식방법으로 무성번식이라고 한다. 

어떤 식물에서는 직립한 줄기가 지면에 닿은 곳에서 나와 수평으로 자라고, 그 선단에서 다음세대의 줄기가 될 싹을 갖추는 경우가 있다. 또한 그렇게 자란 줄기가 도중의 마디에서 뿌리를 내려 땅에 착생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가지를 식물학에서는 스톨론(stolon)이라 하고 포복지, 눈줄기, 기는줄기, 또는 포지라고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런 스톨론 중에서는 지상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지하에서 발달하는 포복근경이라는 형태도 있다. 제주도에 자라는 식물로 개맥문동, 제주골무꽃은 대표적인 예다. 또 가지가 지상에서 옆으로 뻗기만 하고 뿌리를 내리지 않은 땅빈대와 같이 선단까지 늘어서 있는 평복(procumbent), 눈잣나무와 같이 선단이 굽어서 일어나는 경복(decumbent) 현상이 있다. 삼백초는 수평으로 뻗는 지하경과 직립한 줄기의 기부를 이루는 지하경의 굵기가 큰 차이가 없어 특별히 포복근경이라 하고 있다.       

지상으로 나오는 것으로는 애기괭이눈, 범의귀를 들 수 있다. 한라산 정상부에 자라는 제주양지꽃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고산이나 건조한 환경에 자라는 식물에서 이런 형태들이 흔하다. 꽃은 피었는데 나비가 추워서 활동을 못하면 이런 방식으로라도 번식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양치식물에서 자성배우자와 웅성배우자의 결합에는 물이 필수적이다. 더부살이고사리는 건조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포자번식 외에 포복지에 의한 무성번식을 하지 않으면 역시 생존이 불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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