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휴 전 초등학교장·논설위원

가난한 멕시코 소년은 만화 속 주인공의 영웅담을 읽으며 꿈을 키웠다. 그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주인공처럼 영웅이 되고 싶었다. '넓은 데로 가보자!' 다부진 마음을 먹은 소년은 미국으로 건너가려다 국경순찰대에 붙잡혔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두 번째 시도 끝에 철조망을 뚫고 미국으로 건너간 소년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잡초 뽑기, 용접 보조 등의 일을 하면서도 꿈을 잃지 않았다. 하루 열두 시간을 일하고 창고나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면서도 야간강좌를 들었다. 제대로 씻지 못한 몸에서 나는 땀 냄새, 생선 기름 냄새에 찌든 그였지만 성적은 늘 뛰어났다. 전문대학을 마친 소년은 버클리 대학을 거쳐 하버드 의대까지 졸업할 수 있었다. 

꿈이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던 소년 알프레도 퀴노네스 히노호사(1968~ . 애칭: 닥터 Q). 그는 이제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최고의 뇌수술 전문의가 되어, 미국 최고 병원으로 손꼽히는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한 해에 수 백 번의 외과수술을 집도한다. 

빈민가 출신의 흑인 사생아로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하고, 열네 살에 임신까지 하는 등 가슴 찢기는 아픔을 겪었던 소녀가 있었다. 하지만 이 소녀는 꿈이 있었기에 주저앉지 않았다. 열일곱 살 때 화재예방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이야기>의 힘을 실감하고 저널리스트를 꿈꾸기 시작한 오프라 윈프리(1954~ ). 그는 오늘날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토크쇼의 여왕이 됐다.

자신이 처한 어려운 조건을 하늘이 내려준 축복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는 마쓰시타 전기(현 파나소닉)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1894~1989). 그는 '지독한 가난, 허약한 몸, 짧은 가방끈'이 자신을 분발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가난했기에 겪은 구두닦이·신문팔이 경험은 고난을 버텨내는 힘이 됐고, 허약한 몸을 이겨내려고 시작한 운동은 노년까지 건강한 삶을 살게 해줬으며, 배움이 모자랐기에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삼아 질문하고 경청하고 배우면서 생각이 열릴 수 있었다는 것.

간절한 꿈이 있어야 포기하지 않는 에너지가 생긴다. 하지만 이 말을 함부로 하기 어려운 시대가 돼가고 있다. 가난하거나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간절한 꿈을 가져라, 꿈이 있어야 고난을 이겨낼 힘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면 순순히 받아들일까. 젊은이들의 생각은 현실적이다. JTBC에서 2016년 서울시내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로는 장래희망 1위가 공무원(22.6%), 2위는 건물주와 임대업자(16.1%)였고 10명 중 3명은 '꿈이 없다'는 답변이 나왔다[2017.8.16. 동아일보]. 씁쓸하지만 현실은 그렇다. 청소년들이 꿈을 키우기엔 우리 사회가 너무 각박한 것 같다. '꿈을 가지라'는 말을 함부로 말하기가 멈칫거려지는 때다. "꿈을 찾아 마음껏 활동해보고 실패도 경험해보라"고 자신 있게 말할 부모나 선생님이 몇이나 될까. 우리 사회는 '안정적이고 고수입 직장'을 우선하는 경직된 사회가 돼 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출발은 작고 보잘 것 없더라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꿈을 키워갈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이나 가출한 소년, 막노동을 시작으로 쌀가게 점원을 거쳐 자동차 정비공장을 차렸지만 문을 연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화재로 모든 걸 잃고도 주저앉지 않은 꿈과 열정으로 현대그룹을 일군 정주영 회장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간다면.

다시 교단에 설 수 있다면 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잘 알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바로 그 일에 꿈과 열정을 바치라"고. 75만 마리의 나비를 채집?연구했던 나비박사 석주명처럼, 궁핍 속에서도 그림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이중섭처럼, 끼니를 거르고 근위축성 루게릭병에 시달리면서도 제주 오름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았던 김영갑처럼.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