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전 한마음병원장·논설위원

다사다난했던 무술년도 지나고 이제 희망찬 기해년 새아침을 맞았다. 우리 제주도민 모두에게  기해년 한 해가 보람되고 행복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늘 그렇지만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국가적으로는 적폐를 청산한다고 온 사회가 시끄러웠고, 우리 고장에서는 영리병원 개원 허가 문제로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었다. 1년 동안 애써 왔지만 아직도 완전히 해결됐다고 보기에는 미심쩍다. 

우리들은 어떤 일을 진행할 때 도중에 목적을 잃어버리는 경우를 흔히 본다. 목적이 분명하면 설령 도중에 사소한 착오가 있더라도 곧장 본래 줄기로 돌아갈 수 있으나 방향을 잃어  버리면 나중에야 엉뚱한 곳에 이르렀음을 알게 된다. 이런 일은 주로 선택의 문제를 옳고그름의 문제로 오인하는 데서 발생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이조 후엽에 발생한 대비의 상복 착용 기간에 대한 대립으로 당쟁이 심화되고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일을 들 수 있다. 손자인 왕이 죽었는데 할머니가 상복 입는 기간을 의논해 정하면 그만인 것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다투니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된 것이다. 

영리병원 문제도 그렇다. 영리병원 자체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될 수 없다. 그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라면 어떻게 많은 나라에서 허용이 될까. 다만 이 시기에 그런 형태의 병원이 제주도에 세워지는 것이 도민들에게 어떤 이익이나 해가 될까 하는 것을 살펴보고, 대다수의 도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쪽으로 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을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또는 다툼이 있는 결과를 예상해서 많은 도민들에게 불이익을 가게 한다면 그것을 올바른 행정이라 할 수 있을까. 다만 필요 없는 공론화과정을 거치면서 세금을 허비하고, 결과를 수용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민의에 반하는 행정을 하게 된 것은 지적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이왕 공론화 과정을 거칠 것이라면 도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 좀 더 많은 도민들께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연세대학교의 김형석 명예교수도 우리나라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흑백논리를 꼽았다. 진정한 흑과 백은 있을 수 없고 흑과 백 사이에 무수한 회색이 있다. 우리들은 흑이 아니면 백이라고 해 싸우니 타협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도 흑과 백 사이에 무수한 회색이 있음을 인식하고, 그 무수한 회색 가운데서 어느 지점을 선택할 것인가를 지혜롭게 의논하는 토론의 장을 활발히 열어 나가자.

유대교의 가르침에 '티쿤 올람'이란 말이 있다고 한다. 이 말의 뜻은 '(삶의 목적은) 세상을 개선하는 것'으로 유대교 학자들은 이 말을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했지만 미완성인 상태로 남겨 뒀으며, 그런 세상을 완성시키는 임무를 우리 인간들에게 부여했다. 따라서 인간의 존재 이유는 지금보다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신이 남겨둔 창조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의 시인 랄프 왈도 에머슨도 그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에서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을 진정한 성공이라 했다.

지난해 제주도의 자원봉사자의 수는 16만명을 돌파해 도민 인구와 비교했을 경우 24%에 육박하게 돼 전국 최고를 기록하게 됐다. 우리나라 자원봉사자 수가 이제 겨우 20%를 넘고 있다. 도민들이 이런 결과를 얻은 것은 정말 자랑할 만한 일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여러 선진국의 참여율이 50%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아직은 멀었다는 생각이다. 자원봉사 활동이 행복을 찾는 지름길이며 내 인생의 빚을 갚는 기회라는 생각으로 좀 더 많은 도민들에게 참여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우리는 디즈레일리 경의 '오두막집이 행복하지 않으면 왕궁도 안전하지 않다'는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새해에는 선택의 문제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 오해해 갈등을 일으키는 일들이 없고, 우리 모두가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도록 힘을 합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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