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웅 제주지방기상청장

두꺼운 옷으로 온 몸을 꽁꽁 싸매게 하는 칼바람이 일상인 이 겨울에 지난  여름의 더위를 떠올린다면 그리 와 닿지 않겠지만 참으로 무더운 여름이었다. 한낮의 폭염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밤의 열대야는 누구에게든 견디기 힘든 고역이었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여름이 역대로 가장 더운 여름이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으나 실상 제주도 여름철 평균기온이 가장 높았던 해는 2013년이었고 지난해는 최고 순위 5위에 불과하다. 여름철 평균기온의 최고 순위 10위까지는 2000년 이후가 대부분으로 기후 변화에 의한 온난화로 최근 여름철 평균기온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앞으로의 여름들이 더 더워지고 여름철 평균기온 기록이 매년 경신되는 것이 더 이상 놀랍지 않은 일이 돼버렸다. 이쯤 되면 온난화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는 북극곰의 눈물이 강 건너 불구경 같은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제주도의 기후 변화 요소 중 기온의 온난화 경향이 뚜렷한 것으로 분석됐다. 뿐만이 아니라 한반도의 기후변화와 비교해도 현저히 제주도의 기온은 상승하고 있다. 한반도는 평균기온이 10년에 0.18도 상승하는 반면, 제주도는 10년에 0.29도 상승하고 있다고 하니 한반도에 비해 제주도의 기온이 매우 높게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또 최고기온은 10년에 0.22도 상승하고 있고, 최저기온은 10년에 0.45도로 상승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 최저기온의 상승 경향인 10년에 0.24도의 2배 가까운 수치다. 최저기온이 이렇게 계속 높아진다면 여름철 열대야일수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기후 변화 시나리오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못하고 현재 추세가 이어진다면 21세기 후반, 제주도의 폭염일수는 39.6일 증가해서 연간 41.2일 이상, 열대야일수는 56.3일 증가해 65.8일이 된다. 그렇다면 여름 내내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려야 되는 상상 조차 하기 싫은 여름이 올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넋 놓고 이런 미래를 기다리지는 말아야 하겠다. 전 지구적인 현상이기에 국가 간 협약으로 온실가스 저감 정책을 실현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고, 우리 스스로도 아주 작은 일부터 일상에서 실천해야 한다. 전등을 켜고,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에어컨을 켜는 우리 일상의 행동들 하나하나가 모두 온실 가스를 배출하는 행위다. 물론 인간의 기본 생활과 연관돼 있는 다양한 편리함과 당장 이별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불필요한 전등 끄기, 대중교통과 친해지기, 겨울철 실내 온도를 조금 낮추고 내복 한 장 껴입기 등. 조금은 불편할 수 있지만 일상의 사소한 습관부터 바꾸려고 노력하고 조금씩 실천해 본다면 분명 우리의 노력들이 모아져 여름철 기온의 기록 경신 뉴스가 줄어들지도 모른다. 

한라산에 흰 눈이 아름답게 쌓여있는 이 겨울에, 여름철을 걱정해 봄이 엉뚱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한라산의 저 설경을 매년 겨울 감상하고 싶다면 한 번 쯤은 생각해보고 행동해 볼 만한 일이다. 기후 변화 시나리오에 의하면 지금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저감되지 않는다면 21세기 후반에 제주의 겨울이 없어진다고 하니 말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