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주 걸스로봇·제주과학문화공간 별곶 대표

올해의 첫 우주뉴스는 중국의 달 탐사선 '창어 4호'가 달의 뒷면에 착륙했다는 소식이었다. 2013년 '창어 3호'가 달의 앞면에 탐사로봇 '위투(옥토끼)'를 내려보낸 데 이어 6년만의 일이다. 

여기서 창어란 '어머, 그 처자, 달나라 항아님처럼 곱기도 하지' 할 때 바로 그 항아다.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와 함께 펼쳐지는 상찬을 들어보지 못했다면 당신은 밀레니얼 세대일 확률이 높다. 필자만 해도 아버지 무릎에서 삼국지, 초한지, 열국지 읽으며 자라난 구세대다. 항아는 남편 '예'에게서 불사약을 훔쳐 달아났다는 문제적 여신이기도 하고, 남편의 부하에게 신변에 위협을 느껴 살기 위해 불사약을 삼키고 남편과 헤어진 희생양이기도 하고, 폭군 예에게 불사약으로 속인 독약을 건네 죽이고 그 포상으로 승천했다는 영웅이기도 하다. 이 세 가지 버전의 항아 이야기는 그동안 감춰져 있던 달의 뒷면처럼 이 세계의 진실을 들여다보게 한다. 

먼저 남편 예부터. 예는 태양이 열 개나 떠올라 백성들이 타 죽을 때, 아홉 개의 해를 떨어뜨리고 백성들을 도탄에서 구한 활의 신이다. 그러나 천제의 아들인 태양을 아홉이나 죽인 죄로 아내 항아와 함께 신계에서 쫓겨난다. 그는 인간계에서도 여전히 신계를 그리워해 아내에게 불사약을 구해오라 시킨다. 항아는 여신들의 여신인 곤륜산 '서왕모'에게 찾아간다. 서왕모는 불사약을 내주며 일렀다. 이 약을 남자와 나누면 땅에서 신선으로 살 것이요, 나누지 않으면 하늘에 올라 신으로 살 것이다. 항아는 갈등하다 한입에 털어 넣는다. 어쩌면 그건 여성에서 여성으로 이어지는 비기, 불사약의 연대였다. 이를 질투한 세상이 그에게 '도둑년'의 레떼르를 붙이고 월궁에 혼자 처박는 벌을 내렸다. 신화와 전설이란 현실계의 질서에서 아주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두 번째 버전은 요샛말로는 '미투' 상황에서 생존한 이야기로 읽힌다. 신계에서 쫓겨난 예와 항아는 서로를 몹시 사랑하여 현실에 만족하며 살기로 한다. 약을 먹지 않기로 합의한 뒤 예는 싸우러 나가고 항아 혼자 불사약을 지키고 있는데 다른 남자가 그걸 탐한 것. 불사약은 그저 불사약이 아닌 게다. 항아는 할 수 없이 약을 먹고 승천한다. 둘은 견우와 직녀처럼 하늘과 땅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그리워한다. 그런데 왜 죄는 남성이 짓고, 욕은 여성이 먹는가. 이 역시 현실의 적나라한 반영이랄까. 중국인들은 불사약 따위에 흔들리지 않았던 두번째 사랑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달에서 기다리는 항아를 만나러 탐사선을 보낸 것이라고, 왜 구출도 남성의 몫이냐는 의문이 차오르지만….

그리고 마지막 버전, 이것은 말 그대로 여성 영웅의 서사다. 여기서 예는 남편도 아니고 폭군이다. 예는 불사약을 구해왔다는 항아를 의심하면서도 그의 미모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러면서도 먼저 약을 먹어보게 한다. 예는 항아가 멀쩡한 것을 확인하고 따라 먹었으나 쓰러진다. 독약이었던 것. 백성을 도탄에서 구한 항아는 하늘에 오른다. 이 버전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여성 영웅을 달가워하지 않는 세상 민심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 악역을 처단한 남성 영웅들은 대개 현실계에서 상을 받는다. 미인과의 결혼과 왕의 지위를 한꺼번에 획득하는 패키지 같은 것. 그런데 왜 여성 영웅은 저승에 가서야 보상해주나. 기껏 하늘의 신이라고 해봤자 월궁에 갇히는 신세인데, 미모의 파트너도 없이 옥토끼랑 방아나 찧으며 놀아야 하는데, 이것이 항아를 통해 살펴본 달의 뒷면, 세상의 절반, 여성들의 이야기다.

27.3일의 자전주기와 공전주기를 가진 달은 한결같은 앞면만 지구에 보여준다. 달의 뒷면에서는 교신이 끊긴다. 중국은 월궁선녀를 만나러 통신중계 위성까지 띄웠다. 진실을 보려는 데는 노력이 든다. 어쩌면 돈과 세월을 무장무장 잡아먹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뒷면에 무엇이 있는가를 눈으로 확인하는 일은 중요하다. 아폴로 11호가 달의 앞면에서 보지 못했던 '바니걸'의 진짜 이름을 찾아, 우리도 출발. 마침 제주에도 스타트업이 만드는 그라운드 컨트롤 센터가 세워진다고 한다. 별곶도 걸스로봇도 무언가를 함께 도모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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