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주 봉성교회 목사

지적 능력을 기준하여 본다면 인간은 삼라만상에서 매우 특이한 존재이다. 더구나 영원과 무한의 세계를 추구하며, 신의 영역에까지 소통이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에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표현도 생겨났다. 기술의 발전과 산업의 발달에 따라 인간은 지구촌을 정복하였고, 제대로 경영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행성 지구의 패자로서 이 시대를 인류세라 불러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지질학 교과서에서는 만 년 전부터 시작된 홀로세가 아직도 유효하다고 한다. 빙하기가 지나고 안정된 지구의 환경이 인류 문명의 터전이 되었다. 역사적으로는 그 사이에 석기, 청동기, 철기를 거쳐 역사시대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이제 확실하게 지구촌의 지배자가 된 인류의 지위를 고려하여 인류세라는 용어를 지구의 역사에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 출발 기준으로, 산업혁명으로 기술문명이 보편화되는 시점을 생각하기도 하고, 이차대전 이후 핵 무장이 확산되던 시대를 짚기도 한다. 최근 두 세대 동안 세계 인구는 배로 증가하였지만, 높아진 농업 생산력은 이를 지탱하였다. 교통과 통신 분야의 발전은 지구촌의 거리를 한껏 좁혀 놓았다. 능력이 있는 나라들은 경쟁하듯이 우주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근심은 훨씬 늘어났다. 식탁에 오르는 먹거리는 생산과 유통과정을 알 수 없다. 유전자 조작으로 생산된 식품도 많고, 함께 섭취되는 유해 화학물질도 걱정스럽기만 하다.

미세먼지는 우리 대기 환경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이웃나라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는, 우리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 공장에서 생겨나는 그리고 시민들의 생활이 버리는 쓰레기들은 멀리 쫓겨나지 않고 다시 돌아와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되고 있다.

무한히 공급되고 쉽게 소비되던 비닐과 플라스틱의 잔해는 오래도록 분해되지도 않고 남는다. 오감으로는 감지하지 못하는 작은 알갱이로 쪼개져서, 우리의 땅과 바다는 이미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오염되었다 한다.

많은 종의 생물이 우리 시대에 멸종되거나 존립이 위협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촌을 장악한 인류는 살아남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지구의 역사에서 인간은 공룡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하였다.

생명체의 구조와 발생, 그리고 유전에 대하여 분자 수준에서 탐구하기 시작한 것이 인류세와 더불어 진행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서자 인간의 유전자는 해독이 되었다. 게놈 프로젝트라 불리는 이 작업은 설계도를 손에 넣은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제 각 부분의 기능과 역할, 성능을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다면, 생명은 더 이상 신비의 영역이 아니다.

최근에는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는 기술도 획득하였다 한다.

유전자 가위라 불리는 이 방법은, 적절하게 유전자를 자르고 붙일 수 있는 능력을 연구자들이 갖추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 최신 버전에 해당되는 크리스퍼는 매우 정교하게 그리고 실수 없이 원하는 곳에서 작동한다.

이러한 새로운 힘은 선한 의도에서 많은 도움을 인류에게 안겨 주지만, 동시에 부작용과 파괴력으로 말미암은 새로운 공포를 벗어날 수 없다. 지속가능한 성장과 적절한 활용을 말하지만, 관련 과학자들의 연구 속도는 이미 통제의 범위를 벗어난 듯하다.

제주 땅에서도 개발이 선진화를 뜻하던 시대가 있었다. 새로운 희망으로 출발하던 시기가 이제 두 세대 가까이 흘렀다. 지금 제주인들은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개발로 우리의 자원과 환경은 자정과 재생산의 능력을 잃고 허덕인다.

아차 하는 사이에 우리가 이 땅에서 부족하나마 행복하게 살았던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후세대를 고려하여 우리가 취할 태도는 세대를 뛰어 넘는 연대이다. 과거 어느 시대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부담을 우리는 과제로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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