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섬 용암의 땅, 곶자왈 탐사 12. 관중과 히초미

용암숲 곶자왈은 다른 숲에 비해서 이색적인 식물이 많은 게 특징 중의 특징이다. 따뜻하고 비가 많이 오는 우리나라 최남단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쪽이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만이 아니라 낮은 지역이라는 지형적 특성도 여기엔 한몫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모두가 따뜻하고 습하다는 환경을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또 한 가지 덧붙인다면 오랜 세월 훼손하지 않고 잘 보존해 온 덕분이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곶자왈은 종 다양성이 높은 곳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놓고 보면 곶자왈에는 다른데 살지 않는 식물들이 많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다른 곳에도 널리 자라고 있지만 이곳엔 좁은 면적이 오밀조밀 모여 살고 있어서 다양성이 높은 지역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살아가는 모습이 이색적이게 되는 것이다. 이색적이게 된 건 또 있다. 다른데도 널리 분포하지만 이곳에 오면 그 모습이 달라 보이게 되는 특징 때문이다. 

아주 흔한 식물 중 관중이라는 종이 있다. 이 식물은 곶자왈에 많이 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다소 고지대면서 습기가 많고 햇빛도 반 정도는 들어오는 곳이 적당한 곳이다. 낙엽이 지는 나무들로 된 숲이거나 상록수가 비교적 적게 섞여 있는 숲이라면 안성맞춤이다. 한 두 포기가 아니라 아주 집단으로 모여 산다. 어떤 곳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종가시나무를 대표로하는 상록활수가 많고 비교적 건조한 곶자왈에서 집단을 이루는 가는쇠고사리와 비교가 된다. 

오랜 세월 나뭇잎이 떨어지고 흙이 쌓이면 아무리 삭막한 용암지대라도 종자가 발아하고 터전을 잡을 수 있게 된다. 점차 토양층은 두꺼워지고 적당히 물도 머금게 된다. 그러면 처음에 이끼 같은 아주 작게 엎드린 식물들만이 살 수 있었던 가난한 살림이 좀 더 풍요로워지게 되고, 보다 큰 종들도 들어와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춥고 건조한 곳에서는 비쩍 마른 몸으로 근근이 살아갈 수밖에 없다가도 이곳에 오면 키가 커지면서 근육도 튼실하게 붙는 것이다. 

관중이란 종은 한반도 전역에 자란다. 일본, 중국에도 널리 분포하고 러시아의 극동에도 살고 있다. 그런데 국내의 다른 곳에 가 보면 이 종이 상당히 왜소하다는 점에서 의아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백두대간이나 백두산까지도 이 식물은 관찰 가능한데 주로 계곡 사면의 중간  정도에서 보인다. 제주도의 한라산 또는 곶자왈에서처럼 크게 군락을 이루지도 않고 개체의 크기도 좀 더 작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식물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식물은 한 두 번쯤 보게 마련인데도 제주도에서 만나면 그만 헷갈려 버리는 것이다. 이게 무슨 고사릴까. 왜 이렇게 크지? 참 이색적이다. 무슨 열대의 숲에 들어 온 기분이다. 관상용으로 키우면 좋겠다. 이런 감상을 하게 된다.

뿌리줄기는 오래된 개체일수록 지면에서 높아져서 마치 줄기를 연상하게 하지만 보통은 직경과 높이 각각 10㎝ 정도로 뭉툭하다. 여기엔 묵은 잎들이 붙은 채로 누워 있기도 하지만 눈에 잘 띄지는 않는다. 그러나 새롭게 나온 잎들은 10여개가 연중 싱싱하고 둥그런 모양으로 배열하여 원시적인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높이는 1m을 넘는다.    

조금 희소하지만 비슷한 종이 있다. 좀나도히초미다. 사실 관중이나 좀나도히초미는 모두 관중과에 속한다. 이 관중과에 속하는 종들은 이들만이 아니라 모두 새순에 비늘조각이 붙어 있다. 잎자루나 잎몸에도 비늘조각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 비늘조각이야말로 이들의 특성인데 관중이라거나 히초미라거나 하는 이름이 붙어 있는 국내의 모든 종은 이 비늘조각이 많이 붙어 있는 것이다. 많기도 하지만 또 매우 크기 때문에 아주 이색적이고, 보는 이에 따라서는 이것을 아주 싫어해서 기피하기도 한다. 

그리고 포자낭군을 덮고 있는 포막은 신장형, 방패형, 어떻게 보면 심장형 같기도 한 모양이다. 이 포막의 겉면은 털이 없이 매끈하다. 잎몸은 전체적으로 종이나 가죽을 연상하게 하는데 아주 질긴 느낌을 준다.

그 중 이 좀나도히초미는 더욱 가죽질을 하고 있다. 곶자왈의 함몰지나 차가운 바람이 나오는 곳에 자란다. 이 종도 관중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전역에 자란다. 외국으로는 일본, 중국에도 흔하지만 러시아, 유럽과 북아메리카에도 분포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우리나라 특히 제주도 곶자왈보다는 추운 곳을 선호하는 것이다.  

이름이 왜이래?

관중, 무슨 콘서트에 몰려든 사람들을 말하는 것인가? 식물이 이름이 왜 이래? 의아하다. 이 이름은 1937년 조선식물박물회에서 발간한 조선식물향명집에 처음 등장한다. 한자명은 관중(貫衆)이다. 한국식물명의 유래라는 책에는 면마(綿馬), 희초미, 호랑고비와 같다고 했다. 일본의 자료에는 큰양치 또는 면마로 나온다. 학명 드리옵테리스 크라시리조마(Dryopteris crassirhizoma)는 뭉툭한 지하경을 갖는 건조한데 자라는 양치식물이라는 뜻이다. 관중이나 면마 둘 다 중국 혹은 북한 자료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너무 쉽게 차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약명으로도 이렇게 쓴다.  

히초미는 무슨 뜻일까. 사실 이 이름은 북한에서 쓰는 이름이다. 회초, 회초미라고 한다. 이걸 받아 적는 과정에서 희초미라거나 히초미라는 이름이 되어 버렸다. 본래의 뜻과는 아주 멀어져 버린 것이다.

식물을 공부할 때 어렵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가 식물학에서 쓰는 이름과 우리의 언어습관과 너무 다르다는 점이다. 도대체 관중이라거나 히초미라는 식물이름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학명은 나름의 체계가 있어서 과학자들에겐 아주 쉽게 다가온다. 그러나 일반명은 무원칙하게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생소한 이름이 많다. 과학의 대중화에 큰 걸림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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