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사람들은 하나씩 무덤을 남기고/차례차례 기억 저편으로 들어갔다//배들이 긴 절규를 던지며/물마루를 넘어가고 있다//해 뜨는 아침 이슬에는 밤 뒤로/사라지는 저녁 연기가 어린다//젖어 타는 놀이 먼동을 보여 준다(중략) 먼 바람 속 강둑 길을 걸어/그는 언제 오나//동녘 산허리에 안개비 내리는 한낮의/무지개로 빛나다가 기다리는/그는 언제 일어나 놀빛 지고 오나”(‘그는 언제 오나’중)

 고영기 시인의 시에는 그리움이 넘쳐난다. 분명 우리들의 곁에서 저마다 존재의 이유를 알렸던, 하지만 이제는 그 존재의 흔적만을 남긴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배어난다.

 그가 그리워하는 것은 “어제도 오늘도/힐끗힐끗 뒤돌아보며/도둑고양이처럼 달아나는 길들”(‘깊은 잠 오랜 길’이거나 “하나씩 무덤을 남기고/차례차례 기억 저편으로 들어간”마을 사람들이다.

 시인은 달아나거나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길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한다. 그리고 시인이 그리워하는 것들은 모두 사라져간다.

 시인은 왜 사라지는 것들을 그리워할까. 시인에게서 사라지는 것들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시인이 딛고 이 땅, 제주의 삶일 것이다. ‘말 젖줄’을 대고 살아왔던 제주인의 삶의 원형질이 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한 회한과 아쉬움을 시인은 그리움이라는 정서로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그리움은 그대로 하나의 별빛으로 치환되어 시에서 끊임없이 변주된다. “말은 사라지고/땅 끝을 바라본다/땅 끝에서 바다가 일렁인다/빛 바랜 별들이 가라않는다”거나 “내가 돌아 올 때는/온몸에서 반딧불처럼/별빛을 내어/어둠을 밝힐 수 있을지”라고 말하는 시인에게 별빛은 그리움의 구체적 대상이자, 제주인의 삶의 원형질을 투영하는 대상이다.

 시인으로 소설가로, 그리고 저널리스트로 다채로운 필력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는 고영기 시인의 이번 시집은 창작에 전념하고 있는 최근의 시인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87년 시단에 얼굴을 내밀기 전, 활발한 시작 활동을 펼쳤던 고영기 시인에게 이번 시집은 세 번째. 과작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소멸해 가는 그리움, 그리고 그 소멸에서 다시 그리움이 탄생하는 순간을 내밀한 서정적 언어로 풀어내고 있는 시편들에서 우리는 그 과작의 이유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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