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성 편집상무

고두성 편집상무

종종 풍자만화에 거만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살찐 고양이'(fat cat)는 탐욕스럽고 배부른 기업가나 자본가를 상징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적으로 소득 불평등 문제가 심화되면서 살찐 고양이에 대한 초고액 임금을 제한하는 움직임이 널리 퍼지고 있다.

스위스가 2013년 경영진의 보수를 주주총회에서 결정하고 지나친 퇴직 보너스를 금지하는 주민발의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한데 이어 유럽연합도 은행 임원이 월급의 두 배를 초과하는 보너스를 받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6월 정의당 심상정 국회의원이 법인 등이 소속 임원이나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액의 30배 이상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최고임금법안', 이른바 '살찐 고양이법'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위반 시 물리는 부담금과 과징금으로 사회연대기금을 만들어 최저임금자, 저소득층, 비정규직 지원 사업 등에 사용토록 함으로써 경제주체들간의 소득격차를 시정하고 소득재분배를 달성키 위해 제안된 이 법안은 그러나 시장주의경제에 반한다는 등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폐기됐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살찐 고양이법' 도입이 무산된 가운데 부산시의회에서 전국 최초로 공공기관장의 임금 상한선을 두는 '살찐 고양이조례'를 추진, 주목을 끌고 있다.

부산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 김문기 의원은 지난달 부산지역 공사·공단과 출자·출연기관장은 최저임금의 7배, 임원은 6배로 상한선을 두는 '부산시 지방공기업 등의 보수 지침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3월쯤 상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방공기업을 비롯한 공공기관장의 연봉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제주지역 수준이 의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끈다.

행정안전부 지방공기업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클린 아이'에 따르면 2017년 12월 31일 기준 제주도개발공사 사장 연봉은 1억3561만원, 제주관광공사 사장 1억1952만원, 제주에너지공사 사장 1억587만원으로 집계됐다.

전국 151개 지방공사·공단 기관장 평균 연봉 9380만원을 모두 웃돌면서 전체 순위도 각각 10위, 22위, 40위로 당당히 중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지난해에는 제주개발공사 사장이 1억3864만원, 제주에너지공사 사상이 1억2258만원으로 더 오른 반면 제주관광공사 사장만 200만원 가량 줄었다.

이들뿐만 아니라 도내 13개 출자·출연기관장의 연봉도 만만치 않다. 제주도가 집계한 2018년 공공기관장 연봉총액 현황에 따르면 제주연구원장 1억5505만원, 경제통상진흥원장 1억3325만원, 테크노파크원장 1억1226만원, 문화예술재단 이사장 1억265만원 등으로 도내 공·사기업을 통틀어 거의 최고 수준이다.

이는 행정안전부 지방재정 통합공개 시스템 '지방재정365'(2017년 12월 31일 기준)에 올라온 서울연구원장(2억392만원) 정도에 비해서만 뒤처질뿐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1억1395만원), 경기연구원장(1억1335만원), 부산테크노파크 원장(1억102만원) 등 대다수 공기업 기관장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많은 수준이다.

물론 이들 공공기관장 중에는 '밥값'을 충분히 해내는 인사도 없지 않겠지만 기관 성격이나 도내 근로자 평균임금 등을 고려하면 도지사가 연봉계약을 너무 후하게 맺은 것이 아니냐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부산시의회의 조례 개정안대로라면 제주도도 상한선에 저촉되는 기관장(올해 최저임금 기준 연봉 1억4000여만원 이상)이 나올 수 있다는 상황을 자랑스러워해야 할지, 한탄해야 할지 헷갈린다.

제주도의회 역시 살찐 고양이조례 제정에 나설 것이냐 여부는 둘째치고 이번 부산시의회의 시도가 최소한 도내 공공기관장의 연봉 책정에 대한 적정성과 아울러 최저임금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 번 높인 것만은 평가할 만하다는 생각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