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주 제주에코푸드 대표·논설위원

제주 속담에 '시집 장가 안가서 저승에 가면 망데기 쓴다'는 말이 있다. 부모는 자식이 결혼 안하고 죽으면 그 배필을 찾아 사혼을 올린다. 그리고 사돈잔치도 하고 양자를 데려다 재산도 물려준다. 그게 제주인이 생각하는 결혼관이다.

제주도 전통혼례음식에는 지역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또한 혼례절차에는 육지와 달리 전통신앙이 절충돼 있다. 제주전통혼례는 가문잔치, 본 잔치 그리고 사돈열맹 등 사흘 동안 치러진다.

혼례 이틀 전 날은 '돗(돼지) 잡는 날'이다. 삶은 내장 등 부산물을 요리해서 먹는 첫 날이 가문잔치다. 고기와 국물을 먹는 둘째 날이 혼례를 치르는 본 잔칫날이다. 그리고 남겨둔 뒷다리를 신부댁에 가져가서 먹는 날이 사돈열맹이다. 제주도 잔치는 돼지고기로 시작해서 돼지고기로 끝난다고 한다. 돼지국물이라도 먹어야 비로소 잔치에 참여한 것이다. 돼지가 없는 잔치란 상상조차 싫은 모양새다.

가문잔치는 잔치준비를 마무리할 저녁 즈음 혼주의 집에 친척이 모여 향연을 벌인다. 혼례식의 전야제인 셈이다. 가문잔치의 특별음식은 내장을 썰어 담은 쟁반음식이다.

그래서 이른바 '가문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잔치에 참석하는 범위는 부계와 모계의 친족이다. 육지와 달리 모계친족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모계사회의 특징을 나타내는 한 단면이다. 성가와 외가 친족이 같은 음식을 함께 먹음으로써 서로 당임을 재확인하는 자리다.

본 잔치는 혼례 날 아침 신랑이 문신(門神)에 대한 신고부터 시작된다. 문신에게 배례하는 '문전제'다. 상방의 입구 중앙 상부에 문신이 좌정한다고 믿는다. 문전제 상차림은 생 돼지머리가 중심이다. 불에 익히지 않은 것은 원초적인 것으로 신을 위한 가장 신성한 음식이다. 문전제는 유교식 제사법이 아니라 무속 스타일이다. '문전 모른 공사 없고 주인 모른 나그네 없다'고 해 문전신을 으뜸으로 친다.

신랑상과 신부상은 신과 함께 먹는 첫 음식이다. 일생에 받는 가장 큰상이다. 신부방 주변에는 아낙네들과 어린아이들이 모여든다. 어른들은 신부의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그리고아이들은 신부상 음식을 배분받기 위해 기다린다.

아이들에게 쌀밥 한 숟가락과 여러 음식을 고루 손바닥에 나눠준다. 이렇듯 아이들도 결혼식에 참여해 음식을 함께 나눔으로써 혼례는 나눔의 문화로서 공동체 의식을 더욱 공고히 다지게 한다. 또한 신부가 상을 받으면 비로소 신랑집의 식구로 편입되는 상징이기도 하다.

신부가 큰상을 받자마자 동반자는 밥그릇 뚜껑에 차린 음식을 고루 떠서 상 밑으로 넣어둔다. 이것은 무속의 '지장본풀이'에 근거를 둔 이간질의 여신을 먼저 대접해 부부의 이별을 막는 주술법이다.

사둔열맹은 사돈의 맹약을 위한 잔치다. 신부댁이 주빈이 돼 서로 당을 맺는 사돈잔치이다. 신랑댁에서 술과 돼지고기를 가져가고 신부집에서 밥과 국을 준비한다. 이렇듯 차린 음식을 함께 먹고 마심으로써 공동체의 정체성을 갖게 한다. 그 후 양가에서 상례가 나면 팥죽을 부조하는 사돈 혈맹관계가 성립된다.

혼례 속의 음식문화, 음식 속의 혼례문화는 제주 의례문화의 백미이다. 혼례식을 전후해 벌어지는 일련의 음식잔치 과정에서 제주의 다양한 전통음식 기술과 사회문화적 가치들이 속속 드러난다.

그 가치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특징이 제주전통혼례음식문화의 전형(archetype)이다.
세대와 세대를 거쳐 전승되는 무형문화유산으로서 혼례음식문화는 사람과 환경, 역사와 상호 작용하면서 공동체와 집단에 의해 끊임없이 재창조돼왔다. 기억에서 멀어져 가는 전통혼례와 음식문화가 제주 무형문화재로 지정·보존돼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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