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논설위원

4월 봄, 제주는 다시 4·3을 맞았다. 해마다 돌아오는 봄이지만 제주4·3은 70년의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봄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추념식에 참석해 제주의 봄을 약속하면서 70년 전 잘못된 국가공권력으로 생명과 삶의 터전을 빼앗겼던 생존희생자와 유족들 마음속에 얼어붙었던 한과 아픔도 조금이나마 녹아들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대통령이 4·3의 봄을 화두로 던졌지만 올해도 묵은 숙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진행형이다. 심지어 올해 행사를 보면 정부와 국회가 야속할 따름이다. 지난해보다 예산이 대폭 줄면서 행사 규모도 축소됐다. 제주도가 4·3 가치를 알리고 전국화·세계화 사업에 필요한 국비 29억원을 요청했지만 지난해말 정부와 국회 심사를 거치면서 반영된 예산은 7%에 불과한 2억원에 그친다. 

그렇다고 완전한 4·3 해결의 고삐를 늦출 수 없는 일이다. 도민들은 미완의 4·3을 온전한 역사로 발돋움시키기 위해 올해도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제주4·3 70주년인 지난해에 이어 동백꽃 뱃지 달기 릴레이 캠페인이 TV 방송을 통해 오는 4월말까지 지속된다. 올해 71주년 추념식도 제주에서뿐만이 아니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중앙광장에서도 마련된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오는 6일 시민참여한마당 행사와 국민문화제가 펼쳐지는가 하면 3일부터 6일까지 추념 전시도 열리고 있다. 4·3평화기행, 전국 추모분향소 설치, 4·3국민대토론회 등도 진행된다.

또 오는 6월 20일에는 4·3에 관한 국제 인권심포지엄이 UN본부에서 열린다. 제주도와 4·3평화재단이 UN대한민국대표부와 공동개최하는 이번 심포지엄은 '제주4·3과 인권, 책임, 그리고 화해'를 주제로 4·3의 역사적 진실을 재조명하는 한편 추가 진상조사의 세계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도민사회의 이같은 노력들이 결실을 맺으려면 정부와 국회의 뒷받침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난 세월을 돌아볼 때 정부와 국회의 역할에 따라 4·3 진상규명의 역사도 발전과 정체, 퇴보를 거듭해 왔다. 보수정권이 잘못되거나 역사를 거스르는 행보로 4·3의 아픈 상처를 덧낼 때는 도민사회가 한마음 한목소리로 이에 저항하고 진실을 지켜냈음은 물론이다.
 

제주4·3이 70년이란 아픈 세월을 견뎌내고 이제 봄을 맞아 활짝 꽃을 피웠다면 올해 71주년은 그 열매를 맺는 전환점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4·3 완전해결의 시작점이 될 특별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하기 위한 정부와 국회의 지원이 절실하다. 희생자와 유족의 배·보상 및 명예훼손 처벌, 불법 군사재판 무효화,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치 등 도민 숙원을 담은 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된지 1년 3개월이 지나도록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 원내대표들은 지난 3월 제주도와 도의회, 4·3 유족과의 면담에서 "4·3특별법 개정안 처리에 관심을 갖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일 6개월만에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도 특별법 개정안이 처리되지 못한 것은 너무도 아쉬운 일이다. 배·보상과 관련해 의원들간 이견을 보인데다 예산 문제를 두고 행안부와 기재부도 조율이 안된 탓이다. 군사재판 무효화도 사법부 의견을 듣고 추후 논의한다는 입장이다.

제주4·3은 잘못된 국가 공권력에 의해 수만명의 무고한 양민이 영문도 모른 채 희생된 우리 현대사의 최대 비극이다. 정치권이 그 아픔과 억울함을 풀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는 여와 야,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제주4·3이 완전해결의 결실을 맺도록 4·3특별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에 정부와 국회는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