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익 탐라문화연구원·논설위원

최근 제주특별자치도의회의 문화관광체육위원회 간담회에서 제주의 미래유산인 문화경관의 관리방안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제주에서 세계유산적 가치를 지니는 문화경관에는 해녀, 밭담, 목축, 용천수 등을 들 수 있다. 해녀 문화경관은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밭담 문화경관에 대해서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준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반면 목축과 용천수 문화경관은 소멸의 길을 걷고 있다.

특히 용천수 문화경관의 소멸은 멀지 않아 제주지역에 환경위기가 닥쳐올 수 있음을 알려준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용천수는 1999년 1025곳이 있었으나 2014년에 661곳으로 크게 감소했다. 용천수 감소요인으로는 인구 및 관광객 증가, 지하수 개발과 난개발 증가, 가축분뇨 무단방류 등을 들 수 있다.

용천수는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에 제주인의 생명수 역할을 했다. 용천수가 있었기에 촌락이 유지됐으며 농업과 목축이 가능했다. 전통사회에서 제주도는 물이 잘 빠져버리는 '사막의 땅'이어서 제주인들은 물 걱정 속에 한 세상을 살다갔다.

용천수는 17세기 중엽 이원진의 '탐라지'에도 등장했다. 이 책의 제주목 산천조에 기록된 '가락세미'(嘉樂泉, 가락쿳물)와 '말세미'(斗泉, 말물)라는 용천수는 주민들의 식수로 이용됐다. 제주인들은 용천수를 중심으로 끈끈한 유대감과 공동체의식을 형성했으며 집안의 대소사에 물을 길어다주던 '물 부지'라는 미풍을 실천했다.

용천수는 제주지역 취락의 80% 이상의 입지를 결정하는 요인이었을 정도로 매우 중요했으며, 어린이들의 여름철 놀이공간이자 어른들의 소통공간이었다. 용천수 물통은 제주인의 삶의 터전이면서 생명수를 공급하던 장소였다. 이러한 용천수가 시나브로 사라지면서 어린이들에게는 놀이공간이 소멸되고 말았으며, 반면에 어른들에게는 힘겹게 물을 운반했던 질곡(桎梏)이 사라졌다.

용천수는 제주인의 생활사와 밀접하게 관련되며 마을주민들의 생로병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용천수의 소멸을 방치하는 것은 용천수 문화를 도민들 스스로 폐기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용천수를 체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용천수 소멸이 야기할 환경위기를 예방하는 대책일 수 있다.

용천수 보호를 위해 무엇보다 마을주민과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협력이 중요하다. 2018년 제주특별자치도청 물정책과에서는 용천수 보호를 위해 "용천수는 제주 마을 형성의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소중한 자연유산입니다"라는 안내문을 세웠다.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마을주민들이 힘을 모아 용천수 지킴이를 조직해 운영했으면 한다.

용천수 보전과 관리를 위한 법적 근거 마련도 필요하다. 용천수에 법규를 적용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적어보이나 용천수에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거나 용천수를 오염시키는 행위에 한해 과태료 부과 등 법적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현재 잘 남아있는 용천수 가운데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용천수 물통을 선정해 시범적으로 향토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호했으면 한다. 제주시 삼양1동 '샛도리물'은 현재도 여름철이 되면 어린이들과 어른들로 넘쳐나는 명소가 되고 있으며 남탕과 여탕의 모습을 온전하고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용천수의 소멸은 제주에 환경위기가 멀지 않았음을 경고하고 있다. 가까운 장래에 물 부족이라는 자연재앙이 초래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더 늦기 전에 용천수와 지하수 보전 등 미래의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한 장기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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