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주 제주도립미술관장

"사람들은 엿장사라고 놀려댔다. 어쩌다가 스케치박스라도 매고 교외에 나가면 으레 듣게 되는 말이었다. 무엇 때문에 객지에 나가 고생을 하면서 점잖지 못한 짓을 배웠느냐고 했다. 유화물감을 보고는 고약도 같고 닭의 똥과도 같다면서 경원에 찬 눈초리를 보내곤 했다" 

한국 최초의 유화가 고희동은 서양화 양식이 이 땅에 유입되던 시절의 사정을 이렇게 회고한 바 있다. 일제강점기에 나라 잃은 설움을 잊고자 본국을 떠나 일본, 중국, 서양으로 나아가 신식 그림을 배운 1세대 유화가들의 예술 여정은 축복보다는 외로운 사투에 가까웠다.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자 진보적 예술 공모전인 '살롱 도톤느(Salon d'Automne)'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선한 이종우, 감정 중심의 표현주의 회화를 처음 제시한 구본웅, 한국식 인상주의 회화의 문을 연 김주경과 오지호, 한국 추상화의 길을 다진 김환기, 유영국 등은 주권도 모국어도 사라진 상실의 시대를 새로운 예술언어로 기록하며 척박한 한국근대미술의 역사를 시작했다. 
예술이 시대의 산물이다 보니 시대는 예술을 통해 더욱 촘촘히 읽히기 마련이다. 
우선 일제강점기의 회화는 신감각의 개성적인 회화뿐만 아니라 조선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토속적인 풍경과 풍물들, 즉 '조선 향토색'이 자주 등장했다.

유일한 공모전이었던 조선미술전람회의 일본인 심사위원들이 이국적 취향에 열광했던 까닭이고 조선의 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한 화가들 나름의 자의적 선택이 있었던 까닭이다. 김종태, 김중현, 김기창 등은 이 분야에서 대표적으로 호명되는 작가들이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의 화단은 식민지 잔재를 들어내는 작업들로 분주했다. '민족미술의 재건'과 '정체성의 모색''한국미술의 국제화'가 숙제였고 제2차로 해외의 신감각 미술의 유입이 화단의 변화를 주도했다.

국제미술계는 바야흐로 추상의 시대였고 1950년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의 한국미술계 또한 그 나름의 추상시대를 선언한다. 

서양화단은 앵포르멜 계열의 회화, 서정적 추상화, 기하학적 추상화, 단색화의 흐름으로 동양
화단은 묵림회를 비롯하여 색보다는 먹의 물질감을 통한 수묵추상의 경향들이 이어졌다. 
정규, 정점식, 정영렬, 정탁영, 서세옥, 송수남 등이 국내화단에서 이응노, 남관, 한묵 등이 세계무대에서 그러한 흐름을 주도하며 한국적인 것의 개성화와 국제화를 일궈나갔다.

제주도립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국립현대미술관 순회전 '내가 사랑한 미술관 : 근대의 걸작'은 바로 이러한 한국 근현대미술의 굵직한 흐름을 살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문화재를 포함해서 국립현대미술관의 국보급 소장품 100점이 개관이래 처음으로 대외 나들이 했으며 제주도립미술관 기증품 20여점도 함께 만날 수 있는 자리다. 말하자면 '두 기관의 소장품으로 꾸린 미술사 전시'인 셈이다. 

교과서에서 봤던 작품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미술전공자를 포함해서 관람객 모두에게 교육적으로나 문화향유의 면에서 일생에 다시없는 명작 산책의 기회가 될 것이다. 

그래서 여러 번 보기를 권한다. 또한 전시의 기저를 이루는 중요한 의미가 하나 더 있다. 
미술관이 국보급 작품을 소장하는 과정은 인고의 시간과 노력과 예산이라는 공력이 필요하지만 그 가치는 미술관의 얼굴이자 힘으로 더 나아가 미래세대의 문화적 자긍심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미술관 소장품을 통한 문화적 나눔의 가치와 즐거움을 도민들 그리고 관람객 모두와 함께하고자 한다. 전시는 6월 9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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