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병찬 서예가 시인·논설위원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그 포근함이 엄마의 품같이 살포시 느껴지는 가정의 달 5월이다.

“야! 빙찬아 학교 글라. 학교에 강 선싕님이 '선빙찬' 해영 불르건 '예'하영 대답허라 이!” 72년 전 초등학교 입학 당시 어머니의 목소리다. 오늘 내 나이 산수가 되었지만 그 포근했던 어머니의 품을 그리며 어린이날도, 어버이날도, 부부의 날도 모두가 도탑게 느껴지는 것은 지금도 마음만은 늙지 않았구나 하는 착각으로의 망상일지도 모르겠다.

조선 전기 문신 겸 최고 시인이신 송강 정철선생이 남기신 훈민가 첫 수에는 “부생모육(父生母育)”의 고전 시조에 그 뜻이 적나라하게 함축되어 있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 분 곧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을까/ 하늘같은 끝없는 은덕을 어디 다하여 갚사오리.” 이 시는 평소에도 흔하게 읽어왔지만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음미해보는 맛은 더욱 더 짙게 느껴진다.

부모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것으로 자식의 본분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슨 프로그램에 의해서든지 어떤 방법으로라도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자식의 도리를 되짚어 보는 달이기도 하기에 너도 나도 선물보따리를 장만하느라 분주하다.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그 고마움에 보답해야 한다는 송강선생의 시조 효행가에는

“어버이 살아 실 때 섬길일란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찌 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라고 하여 전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이 갖고 있는 효심을 행동으로 빨리 옮기도록 하는 일을 일깨우려는데 초점을 두신 듯하다.

더불어 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은 자식들로 이뤄져 있기에 형제간 우애가 돈독치 못하면 난파선이 되고 말 것이다. 이에 송강선생은 다음과 같은 시로 형제간 화목을 요구하였다. “형아 아우야 네 살을 만져보아라/뉘 손에 태어났기에 얼굴조차 같을 소냐/ 한 젖 먹고 길러졌으니 딴 마음 먹지마라.” 가장 가깝게 지내면서도 아웅다웅 다툼이 잦은 것도 형제간에 흔히 있는 현상이다. 특히 재산상속에서의 껄끄러움은 대부분 가정에서 심각한 현상으로 치달을 수 있어 형제간 우애의 도가 허물어질 위험도 많기에 사전 정리가 필요한 것이다.

한 가정에서 부부의 위치는 모든 면에서 중심이요 기둥이며 출발이다. 부부의 정이 도타워야 집안이 탄탄하고 발전한다. 이에 송강선생은 다음의 시로 부부의 결속을 훈계하고 있다.

“한 몸 둘에 나눠 부부를 맺었으니/ 살아 있을 때 함께 늙고 죽으면 한 곳에 간다./ 어디서 망령된 것이 눈 흘기려 하는가.” 부부는 항상 서로 마주보는 거울과 같은 거란다. 그래서 상대방의 얼굴이 나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평생을 반려자로 여기며 처음의 사랑을 잃지 말고, 아내에겐 개성과 취미를 존중하여 키워 주고, 남편의 뜻을 존중하여 가정을 일궈야 사랑스런 삶의 흔적이 바탕이 된 훌륭한 자식이 자라날 수 있는 것이겠다.

요즘 산업사회를 살고 있는 학생들에게서도 여수 우덕초등학교 “이슬”양 같이 어버이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어린이도 있어 마음을 찡하게 만든다. 지난 어버이날 전국을 울린 초등학생 이슬양의 동시 “가장 받고 싶은 상”이 동요로 엮어져 전국에 울려 퍼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짜증 섞인 투정에도/ 어김없이 차려지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그런 상/ 하루에 세 번이나/받을 수 있는 상/ 아침상 점심상 저녁상/ 그동안 숨겨놨던 말/ 이제는 받지 못할 상/ 앞에 앉아 홀로/ 되뇌어 봅니다./ "엄마, 사랑해요."/"엄마, 고마웠어요."/ "엄마, 편히 쉬세요."/ 세상에서 가장 받고 싶은/ 엄마 상/ 이제 받을 수 없어요./ 이제 제가 엄마에게/상을 차려 드릴게요./ 엄마가 좋아했던/반찬들로만/한가득 담을게요./ 하지만 아직도 그리운/ 엄마의 밥상/ 이제 다시 못 받을/ 세상에서 가장 받고 싶은/ 울 엄마 얼굴(상)”

우리 주변에서 흔히 쓰는 가훈으로 “가화만사성”이라는 구절이 있듯이 가정이 화목해야 만사가 편안한 것이다. 스위스의 교육자 페스탈로치는 “가정의 단란함이 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기쁨이다. 그리고 자녀를 보는 즐거움은 사랑이 가장 거룩한 즐거움이다.”고 했다. 올해의 부부대상을 받은 수상자 최수종 하희라와 같이 화목하고 건강하여 즐겁게 웃으며 삶의 질을 높여서 장락무극(長樂無極)의 꿈을 꿔보는 아침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