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프로젝트<7> 광주 남구 송화마을 공동체

생활편의시설 등 부족했던 임대아파트 단지의 변화
아이돌봄에서 여성·가족·노인 친화, 생태까지 아울러
분쟁 해결 등 소통 필요성 실현…”고향같은 느낌“ 중요

“아랫집 윗집 사이에 울타리는 있지만…”하던 동요 가사를 유행가 제목 같은 ‘콩깍지’로 바꿨더니 얼굴 붉힐 일이 줄었다. 아파트 한 켠에 꾸려진 텃밭은 주민 모두의 것이다. 맞벌이 나선 엄마가 퇴근 시간을 재촉하지도 않는다. 돌봐줄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임대 아파트라는 ‘불편한’ 이름이 이제는 살고 싶은 공간이 됐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이야기는 현실이다.

△간절하면 통한다

광주 남구 노대동 송화마을 공동체 이야기다. 흔치 않은 도시 공동체의 시작은 간절함이었다. 30년 국민임대 아파트다 보니 구성이 만만치 않았다. 3단지만 853세대다. 이중 노인가구가 270세대, 한부모 가정이 80~100세대다. 맞벌이를 하는 가구도 200세대가 넘는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아랫집이나 윗집이 비었는지 하는 사소한 사정도 알기 어려웠다.

고령화로 마을 사업 참여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파트 단지가 서둘러 조성된데다 분양 지구 등과 분리되면서 학교가 끝난 뒤 갈 곳 없는 아이들이 늘었다. 마을이 품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11년 전 공부방을 만들었다. 대학생 자원봉사를 활용해 아이들을 품었다.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는 말 한마디에 젊은 부모 20~30명이 마음을 모았다. 그렇게 마을 사업이란 것을 시작했다.

특정 세대만이 아니라 전 세대가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사업을 고민한 끝에 8년 전부터는 수요 장터를 개설했다. 전통시장에 가려면 버스를 두 번은 갈아타야 하는 사정을 거꾸로 이용했다. 약간의 참가비를 받고 생산자 단체를 끌어들였다. 벌어들인 수익 일부는 오후 4~8시 아이돌봄사업에 썼다.

토요일 오후 5살 미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도서관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 과정에서 ‘엄마 선생님’을 고용했고, 솜씨 좋은 할머니는 요리 선생님이 됐다. 관리사무소 옥상 텃밭은 어르신들이 주로 관리한다. 수요일이면 이 곳에서 수확한 채소를 가지고 같이 식사를 하는 ‘건강밥상’을 펼친다. 노대동에서 가장 먼저 작은 도서관을 개관한 곳도 이 곳이다.

박용표 대표는 “뭔가 필요했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하나씩 채워질 때마다 달라지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말은 마을 사업을 들여다 보면 바로 이해가 된다. 아이들만, 아니면 노인들만 하는 사업은 없다. 적어도 1~3대가 함께 어우러져야 가능한 일들을 통해 협업을 한다. 지난해만 경로당 거점사업과 여성가족친화마을사업, 생태문화마을, 작은도서관 활성화, ㈜더함119맘마맘 사업, 저탄소녹색아파트사업, 살기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을 진행했다.

△아이가 마을 살리는 힘으로

처음부터 원만하게 굴러가지는 않았다. 텃밭만 하더라도 처음에는 원하는 세대에 분양을 했지만 이내 공동수도 사용과 몰래 수확으로 인한 갈등이 생겼다. 결국 모두가 함께 관리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바로 ‘빗물저금통’을 만들었다. 단지 입구에는 자원재활용의 필요성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순환의 필요성을 마을 전체에 도입한 결과다. 도시 농업을 꿈꾼 것은 아니지만 주민들이 음식물쓰레기를 모아 퇴비를 만들고, 태양광 설치로 옥상텃밭에 이용되는 전력이나 관리사무소 관리비를 ‘0’으로 만드는 기적도 만들었다.

건강밥상 이전에는 돌봄사업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끼니를 위한 식당을 운영했다. 맞벌이를 하지 않는 ‘엄마’들이 참여해 밥과 반찬을 만들었다. 그에 해당하는 수당을 지급하면서 사업화로 이끌었다. ‘아이를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의 힘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반대로 아이가 마을을 살리는 힘이 된다는 것을 현실로 보여줬다.

이곳에는 또 하나 특별한 것이 있다. 마을 분쟁 해결 소통방이다. 광주에서는 처음으로 송화마을공동체에 ‘콩깍지’라는 소통방이 만들어졌다. 타 지자체에 비해 민원성 갈등이 많은 사정을 고민하던 광주지방법원이 지역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실무 협의 절차와 전문 교육 과정 등을 거쳐 2015년 9월 광주마을분쟁해결센터를 개설했다. 콩깍지 소통방은 그 이듬해 만들어졌다. 센터에서 양성교육을 받은 주민이 직접 화해 지원인으로 나서 주민 갈등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콩깍지만 해도 운영 첫해 한달만 150~200건이나 신청이 몰렸다. 이중 절반 이상은 대화로 풀 수 있는 내용이었다. 지금은 50건 정도로 줄었다.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을 알게 된 때문이다. 이른바 문고리 메모지다. 예전에는 “윗집 ***호 층간 소음이 심해요”라는 민원을 적었다면 요즘은 “아이들이 조금 험하게 노는가 봐요”라는 지나가는 말과 “내일이 우리 아이 생일인데요. 오후 2~4시에 친구들이 놀러와요”하는 귀띔을 한다. 거기에 다시 “그것까지 생각 못했는데 조심할게요”하는 답변과 ‘@@아 생일 축하해“하는 인사말이 보태진다.

박 대표는 ”사람 사는 일이 생각처럼 힘들지 만은 않다. 필요하다는 공감을 하고 할 수 있는 것을 찾다보면 저절로 이웃이 되고 공동체가 된다“며 ”여기서 큰 아이들이 군대에 간다며 인사를 오고, 이 곳을 고향처럼 생각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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