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숲 곶자왈의 환경은 독특한 면이 있다. 땅이 용암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뚜렷한 특징이다. 그런데 이 용암이라는 땅이 화산활동으로 분출한 마그마가 굳어진 암석 정도로만 알았다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부닥치게 되곤 하는 것이다. 이 용암이 만들어질 당시의 환경과 용암 자체의 물성이 너무나 다양해서 곶자왈의 환경도 다양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더하여 제주도의 곶자왈은 비록 좁은 지역에 형성되어 있지만 해발고와 지형이 다양하고, 강수량을 비롯한 기상현상도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런 좁은 지역에 다양한 식물이 분포하게 된 배경은 이런 것이다. 관중과의 예에서도 쉽게 나타난다. 홍지네고사리, 가는홍지네고사리, 왕지네고사리는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아주 비슷해서 웬만한 베테랑들도 헷갈리기 일쑤다. 

홍지네고사리는 상록성이다. 잘 자란 잎은 1m을 넘는다. 제주도의 상록활엽수림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다. 곶자왈에서도 비교적 낮은 지역이면서 상록수림에 많다. 이 식물은 이처럼 대형이면서 흔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구분이 된다. 가장 큰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포막이 붉다는 것이다. 이처럼 포막이 뚜렷하게 붉은 색을 띠는 종은 이 종이 유일한 것이 아닐까한다.

그런데 이 종은 분포에서도 특징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충남 이남에 분포한다. 경기도와 강원도 이북에서는 관찰된 바 없는 것이다. 외국에도 비슷한 경향을 나타낸다. 일본에서는 혼슈, 시코쿠, 큐슈의 저지대나 계곡의 숲에 아주 흔하다. 중국에서도 광동, 귀주, 후베이, 윤난, 저장성 등의 아열대 상록활엽수림에 자라고 있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이 종은 동아시아의 아열대에 분포한다는 것이다. 

가는홍지네고사리도 홍지네고사리와 마찬가지로 잎의 길이가 1m에 달하는 대형의 양치식물이다. 외모가 아주 비슷해서 여간해서 구분이 쉽지가 않다. 두 종간 다른 점은 포막의 색깔이 홍지네고사리가 붉은색인데 비하여 이 종은 회백색이라는 점이다. 약간 우유빛깔처럼 보인다. 그리고 홍지네고사리는 포자낭군이 측맥의 중간에 붙는데 비해서 이 종은 측맥의 끝부분에 붙는다. 포막이나 포자낭군이 없어도 또 한 가지 뚜렷이 구분되는 점은 소우편이 홍지네고사리는 긴타원형인데 비하여 이 종은 선형이거나 선상 창날형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특기할만한 점은 일본에서는 이 가는홍지네고사리를 일본특산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15년 전쯤 제주도에서 이 종이 발견됨으로써 한국에도 분포하는 것이 밝혀졌다. 그 전까지는 일본 혼슈의 카나가와현, 이즈반도 및 그 주변의 섬들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이곳들은 모두 아열대상록수림이다. 그러니 가는홍지네고사리도 동아시아의 아열대에 분포하는 종이라 할 만 한 것이다. 

왕지네고사리는 위 두 종과 이름이 아주 유사하지만 좀 다른 데가 있다. 첫째는 이 종은 하록성이라는 점이다. 양치식물에 있어서는 여름에만 잎이 푸른색을 띠고 겨울에는 낙엽이 되어 지하부분만 남는 것을 하록성이라 한다. 잎의 표면은 위이 두 종은 반짝이는 광택이 있는데 비해서 이 종은 그런 특징이 없다. 포막은 거의 흰색에 가깝다. 소우편은 긴타원상 창날모양이다. 

우리나라의 깊은 산중에 자란다. 일본의 경우는 홋카이도, 혼슈의 북동부와 동부의 온대낙엽활엽수림 내 습한 지역에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는 길림성의 집안(集安)과 장백(長白) 등 압록강 연안의 낙엽활엽수림에 분포한다. 시베리아에도 분포한다는 기록이 있다. 결국 왕지네고사리는 동아시아의 온대지역에 분포한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를 포함하여 이들이 살고 있는 중국과 일본에서는 이들이 사는 곳이 중첩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곶자왈 용암숲에서는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곶자왈 용암 지하공동에 겨울 내내 차가운 공기를 저장해두었다가 연중 서서히 분출하여 지리적으로는 아열대성인 곶자왈을 부분적으로 온대성 기후화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암숲에 이웃으로 살아가는 고사리들

양치식물은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다. 꽃도 없고 열매도 없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뚜렷한 특징을 짚어내기가 어렵다. 그 중에서도 특히 관중과와 개고사리과에 속하는 종들이 그렇다. 사실 양치식물은 이 두 개 과에 대해서 이해가 깊어지면 나머지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국내에도 전공학자들이 많이 배출되고, 그들이 생산하는 도감과 같은 서적이나 관련 논문들도 많이 발표되고 있어 과거에 비해서는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많이 개선되었다. 

관중과에 속하는 종은 전 세계에 2100여 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에도 많아서 50종이 넘게 있다. 식물분류학에서 과라는 분류단위는 넓은 범위에서 비슷한 형질을 공유하는 것인데 얼마나 서로 닮은 종들을 모아 놓았으면 영어로 패밀리(family)라고 하겠는가.

그러니 꽃도 없고 열매도 없는 서로 비슷한 50종 이상을 모아 놓았으니 얼마나 헷갈릴까, 특이하게도 관중과 식물은 종류도 많지만 다른 과의 종들에 비해서 산야에 매우 흔하게 자라고 있고, 어떤 경우에는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기 때문에 자주 눈에 띠게 마련이다. 구분도 어려운 식물들이 이렇게 만나다보니 아예 이름조차 알려고 하지 않게 된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관중과에 속하는 식물들에 대해서 10종 내외만 끈질기게 관찰하여 확실하게 숙지한다면 나머지는 쉬워질 것이다. 

제주도 곶자왈에 살고 있는 왕지네고사리, 홍지네고사리, 그리고 가는홍지네고사리는 외국에서는 서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비교 관찰이 어렵지만 제주도에서는 곶자왈 용암숲에 서로 이웃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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