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병찬 서예가·시인 / 논설위원

지난 6월, 붓을 든 서예가들이 만세운동을 펼쳤다. 평소 묵향을 즐기던 서예가들이 100년 전의 독립운동가인 듯 문예회관 전시장에서 서예작품으로 만세운동을 벌인 것이다.

'民族精神震天動地萬世聲也(대한민국의 독립과 자유와 평화를 쟁취하려는 민족정신 사상 기운이 천지에 진동하도다)'와 같이 민족정신을 앙양시키자는 한시 글귀와, '독립만세 의기 보여 어언 한 세기,삼십육 년 굴욕 받고 광복되어 칠십 여년, 하나 된 기미만세 정신은 간 곳 없고, 하나 될 그 시각은 몇 시에 머물렀나' 등과 같은 자작시, 그리고 100년 전 독립운동가들이 남기신 어록으로 전시장 안에서의 만세운동은 절정에 달하게 했다. 특히 서예전시장 개막식에서 참여자들 모두의 육성으로 만세삼창을 부르는 모습도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제주 서화인들은 서로 간에 화합을 도모하고 서로의 친교를 쌓기 위해 추사선생 탄신일을 기하여 제주특별자치도서예문인화총연합전에 모든 서화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마당 서예전을 펼쳤었는데 전시장 안에는 3·1만세 운동과 함께 짙은 묵향의 흐름이 남달랐다. 이어서 한글서예사랑모임에서 펼친 '묵향으로 피우는 3·1만세'라는 주제의 전시장은 선열 선배들이 남긴 주옥같은 100점의 글귀로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케 했다. 이 두 전시장에 걸려있는 서예작품에는 나라사랑 정신이 가득 찬 애국정신이 물씬 풍기는 작품으로 가득 찼다. 특히 올해 서예전 테마가 3·1만세운동 100주년 기념으로 펼쳐진 전시장이라서 더욱 감회가 깊었다.

서예를 가리켜 흔히 문자를 통한 추상적 예술이다라고 한다. 또한 서예술을 일컬어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 깃든 선비적인 예술이다라고 한다. 어떤 표현이건 간에 서예라는 것은 문자예술을 미적으로 독창성 있게 창출하려는 예술활동임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겠다. 서예(書藝)는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예술이다. 단 한 번의 붓질로 작품이 창작되어야 한다. 모방도 꾸밈도 없는 참신하고 순수한 예술이다. 문자의 기능을 의미 전달과 의사소통 외에 개성과 기교의 창의성과 아울러 인격까지 드러내는 예술이다. 그러기에 서예를 즐기는 사람에겐 저절로 선비의 길을 닦게 하는 예술이 또한 서예이다.

서예에서 이루어지는 그 일점일획은 선비의 자태와 같아서 어떤 화려한 자태나 입체감이 있는 것도 아니며 문자의 결구나 문자간의 연결도 그 모양이 지극히 간단하고 소박하다. 서예는 이렇게 간소함을 지니고 있지만 그 표현은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서예는 단순한 선과 점을 통해 그 사람의 사상과 감정은 물론 인생과 우주의 기운을 드러낼 수 있는 고도의 정신적 숙련을 요구하는 점도 있다. 붓이 한 번 움직인 필획(筆劃)은 단지 선이 만드는 예술에 지나지 않지만 거기에는 대소, 장단, 윤갈, 곡직 등 음악에서의 리듬이 높낮이로 흘러가는 것처럼 자유분방하고 자연적이며 박자감마저 표현되는 예술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적절히 조화시켜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자기만의 독창성을 발현하고 그 속에 인격을 담아내는 것이 바로 서예만이 갖고 있는 추상성이 있는 예술로써 특성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미학과 철학이 내포된 서예술 작품으로 3·1만세를 다시 불러보고자 하는 제주 서예인들의 마음을 읽어볼 수 있는 전시장을 둘러본 방문객은 "제주인의 자긍심을 회복시키고 민족적 자존과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자신을 희생했던 애국자들의 정신을 드러내고자하는 전시장이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유명한 독립투사뿐 아니라 제주에서도 3·1운동 이전 법정사항일투쟁, 조천만세운동, 해녀항일운동 등이 있어 제주인의 독립심을 증명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요즘 한·일간에 무역마찰이 일어나고 있음에 저절로 인상을 찌푸려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생각한다. 서로의 감정을 뒤로 하고 오직 좋은 해결로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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