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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포럼] 평화통일을 꿈꾸던 사람김인주 봉성교회 목사 / 논설위원
김인주
입력 2019-07-31 (수) 19:29:28 | 승인 2019-07-31 (수) 20:00:54 | 최종수정 2019-07-31 (수) 20:00:54

평화를 언급하는 게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다. 평화공존이 북진통일의 반대말이었던 시국에서는, 평화는 곧 공산주의의 언어로 보였다. 한국전쟁이 마무리되던 시절에는 정전협정 체결이 지연되어야 북진통일의 기회가 남아있다고 계산되기도 했다. 그때는 교회도 전쟁이 멈추지 않도록 기도하였다.

1954년 여름 미국 에반스톤에서 세계교회협의회 총회가 열릴 때, 한국교회의 대표들은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에게 약속해야만 했다. 평화공존은 한국교회의 입장이 아니며, 분명히 반대하겠다고 언약을 하고서 참석을 허락받았다. 그들은 약속을 지켰다. 회의 도중에 평화공존이 의제로 상정되자, 한국교회는 이에 반대한다고 선언하고서 퇴장했다.

이 엄혹한 시절에, 평화를 그리고 평화통일을 주장한 사람이 있었다. 죽산 조봉암이었다. 기미년 독립운동에서 피체되어 모진 고문을 견디어야 했다. 출옥한 다음에는 일본 도쿄, 소련 모스크바에서 공부하고 조선공산당 출범의 주역이 됐다.일제시대에 감시와 탄압 속에서도 줄기차게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했다. 여러 차례 투옥돼 고생했다. 해방되자 이듬해에 그는 박헌영과 결별한다. 여운형과 같은 뜻을 품었다고 생각하여, 좌우를 아우르는 합작운동에 열정을 쏟았다. 

그러나 시대는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기회를 허용하지 않았다. 조국이 분단되며 단독정부가 구성될 즈음, 그는 선거에 참여하고 의회에 진출하는 길을 택했다. 강화도가 고향인 조봉암은 인천에서 출마하고 제헌의회의 구성원이 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를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하여 입각하도록 했다. 정치적 지향점이 크게 차이가 있어서 주저했지만, 결국 그는 국무위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북한정권은 무상몰수 무상분배라는 급진적인 토지개혁을 추진했다. 대한민국에 적합한 정책을 세우고 실현하는 것이 그의 책무였다. 유상으로 매수하고 무상 혹은 저가로 토지를 농민들에게 배분하는 안이 채택됐다. 농민들이 토지를 소유하면서 안정된 농업으로 생산력도 향상했다. 

그의 이력은 국회부의장을 거쳐 1956년 진보진영의 대통령 후보로 나서게 됐다. 그는 진보당을 조직하고 그 정점에 섰다. 제1야당 민주당에서는 신익희 후보를 내세운 때였다. 선거유세가 무르익을 즈음 신익희 후보가 급서하였지만, 조봉암 후보에게 더 유리한 지형이 조성된 것은 아니었다.

민주당에선 차라리 이승만을 밀겠다고 선언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선거 결과 이승만 후보는 500만 표 이상 득표하였고, 조봉암 후보는 200여만 표에 머물렀다. 신익희를 추모하는 표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이승만은 조봉암을 두려운 상대라 여겼는지, 제거하려 했다. 1958년 진보당 간부들이 검거되었고, 이들은 간첩죄로 법정에 서게 됐다. 반공 노선을 걷던 대표적인 정치인 장택상과 윤치영을 비롯해 많은 사람의 구명노력에도 불구하고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됐고, 2심과 3심에서는 사형이 선고됐다. 그리고 1959년 7월 31일 오전에 처형됐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가부간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최종적으로는 대법원이 2011년에 무죄를 선고하고 자유당 정권의 대표적인 사법살인으로 규정했다. 같은 해에 국가보훈처는 그를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기를 주저했다. 그 이유는 사상의 문제가 아니고, 일제에 협력하여 국방헌금에 참여한 일이 보도된 신문기사가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북진통일론은 바꿔가며 아직도 우리 사회 일정한 의견으로 자리 잡고 있다. 흡수통일 혹은 자유통일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을 뿐이다. 평화통일이 큰길처럼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조봉암 사형집행 60년을 맞는 아침에 다시 그를 생각해 본다.

 


김인주  webmaster@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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