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권 사회부 차장

1919년 3·1운동 이후 1920년대부터 만주와 연해주 등에서 한국 독립군의 무장 항쟁이 활발해졌다. 이 시기 활동했던 대표적인 독립군 부대로는 의병장 홍범도가 이끈 대한독립군,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 안무의 국민회군, 최진동의 군무도독부군 등이 있다.

이 중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만주 봉오동에서 홍범도, 최진동, 안무 등이 이끄는 연합 부대인 대한군북로독군부가 일본군 제19사단의 월강추격대대를 대파한 전투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록에는 이 전투에서 일본군 157명이 죽고 200여명 정도가 부상을 당한 반면 독립군은 4명이 전사하고 2명이 부상을 입는 데 그쳤다.

봉오동 전투 승리로 독립군의 사기는 크게 진작됐으며, 이러한 기세는 4개월 후인 같은해 10월 김좌진이 지휘한 청산리 대첩으로 이어졌다. 북로군정서군, 대한독립군, 국민회 독립군 등 여러 독립군의 연합 부대는 10여 차례의 전투에서 1200여명을 사살하는 등 일본군을 대파하는 전과를 올렸다.

봉오동 전투는 항일 무장독립운동사에 있어 일본군을 상대로 첫 승리를 안겨준 대규모 전투였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청산리 대첩은 독립군이 일본군의 간도 출병 후 벌인 전투 중 가장 큰 규모이자 독립군이 최대의 전과를 거둔 가장 큰 승리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이들 대승첩의 이유는 독립군의 고취된 사기와 지휘관의 예지, 지형을 활용한 뛰어난 작전계획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인한 한일 갈등이 극에 달한 시점에 독립군의 항일 전투를 다룬 영화 '봉오동 전투'가 최근 개봉했다. 원신연 감독은 "일제 강점기가 피해 역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항의 역사, 승리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 싶었고 꼭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어제 농사짓던 인물이 오늘은 독립군이 될 수 있다" "나라 뺏긴 서러움이 우릴 복받치게 만들고 잡아 일으켜 괭이 던지고 소총 잡게 만들었다". 

영화 속 독립군이 일본을 향해 외치는 이같은 명대사는 어쩌면 일본 불매운동이 뜨겁게 퍼져나가는 현재 대한민국 국민의 감정과 분노를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저항의 역사' '승리의 역사'의 큰 울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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