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봉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또 한글날이다. 한글날을 맞으니 세종과 훈민정음이 떠오른다. '한글은 안녕한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소홀하게 다루지는 않았는지' 한글의 안부를 묻게 된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게도 한다. 이쯤에서 여러 생각이 뒤섞인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고려 사람들의 썼던 어휘를 모아놓은 「계림유사」란 책이 있다. 훈민정음을 만들기 이전이니 한자로 된 350여 어휘가 수록돼 있다. 거기에는 '전복을 필이라고 한다[鰒曰必]'는 구절도 있다. 이 '필(必)'을 어떻게 읽었을까. 학자들은 전복을 뜻하는 문헌의 '쇵복' 또는 '쇵포'라는 어휘와 관련시켜서 이해하려 한다. 그 결과 '必'과 '복'은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심지어 한자어 '必'은 '包'의 잘못이라고까지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제주 사람들은 전복의 암컷을 '암핏', 수컷을 '수핏'이라고 한다. 암탉과 수탉이 '암ㅎ+닭' '수ㅎ+닭' 구성으로 이루어진 어휘임을 알고 있는 것처럼, '암핏'과 '수핏'은 각각 '암ㅎ+빗' '수ㅎ+빗' 구성으로 된 어휘임을 알 수 있다. 전복을 따는 도구인 '빗창' 또한 '빗+창'으로 된 어휘다. 

이들 '암핏, 수핏, 빗창' 등 일련의 어휘에서 공통분모인 '빗'을 얻게 되는데, 이 '빗'이 바로 한자어 '必'에 대응하는 어휘다. '머리 빗는 도구를 필이라 한다. 필(苾)의 음은 필(必)이다.[梳曰苾音必]'라는 구절의 '必'을 끌어들이면 '必'은 '빗'으로 읽었음이 증명된다. 이처럼 제주어가 훈민정음 창제 이전의 공백을 메워주고 있으니 방언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나아가 제주어의 가치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제주어가 국어사의 공백을 메워주는 구실을 한다고 해서 자기 밭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것처럼 제주어를 유리하게 이해하고, 그럴 듯하게 설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 3월 중순이다. 요리를 연구하는 모임에 초대돼 제주어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끝날 무렵 유명한 연예인이 TV에 나와서 "빙떡은 차갑게 해서 먹어야 맛있다는 데서 빙떡이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하던데 그러냐"는 질문이었다. 질문을 듣는 순간 전에 읽었던 '빙떡은 빙빙 말아 만든 떡'이라는 설명이 떠올랐다. 

'빙떡'은 식은 때 먹는다. 그래야 맛있다. "빙떡은 차갑게 해서 먹어야 맛있다"라는 말을 한 연예인은 아마 빙과, 빙수라는 어휘가 있어서 '얼음 빙(氷)'과 관련시켰을 것이다. 사실 '빙떡'은 한자어와 고유어로 구성된 어휘다. '빙떡'의 '빙'은 '떡'의 뜻을 지닌 한자어 '병(餠)'으로, 제주어식 발음이 '빙'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빈'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한자어 '빙'에 고유어 '떡'이 연결되어 '빙떡'이 된 것이다. '고목(古木)'만으로 뜻을 충분하게 전할 수 있는데도, '나무'를 덧붙여 '고목나무'라고 단단하게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빙떡'은 그 의미 만으로 볼 때 '떡떡'인 셈이다.

또 빙떡은 '빙빙 말아서 만들 떡'일까. 사람마다 손매가 다르다. 사람에 따라서 '빙떡'을 '탈탈' 말아서 만들기도 할 것이고, '둘둘' 또는 '뚤뚤' 말아서 만들기 할 터. 그러면 '탈떡', '둘떡', '뚤떡'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빙떡'의 예에서처럼 아전인수식 해석은 위험하다. 

어휘는 아무렇게나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어휘에는 뜻하는 바 의미가 있고 규칙이 있다. 
제주어는 제주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이 녹아 들어가 있으니 제주의 정체성과도 같다. 프랑스에서 "프랑스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프랑스 사람은 프랑스 말을 쓰는 사람이다"라 대답한다고 한다. "제주 사람이 누구냐" 물으면 "제주 사람은 제주어로 말하는 사람이다"라고 답할 수 있어야겠다. 그리고 제주어를 바르게 알고 바르게 써야겠다. 한글날 아침에 다시 할 수밖에 없는 다짐이다. 올바른 제주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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