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 전 충남대학교 교수 논설위원

오랜만에 제주와 서귀포 도심 지역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흑돼지구이 간판이 유난히 많이 보였다. 흑돼지가 지역 특산품이니 특별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허나 복잡한 느낌이 들었다. 몇 달 사이접했던 지역의 동물학대 소식, 해묵은 지역 양돈업의 부산물 폐해 등이 연상되며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몇 년 전 고기집이 들어서면서 지인이 살던 산남 동네가 시끄러워졌던 일도 떠올랐다. 도로 한 편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으나 주위에 과수원이 많아 조용한 곳이었다. 큰 구이집의 연기와 냄새가 심해 옆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아파트 건물에 항의 현수막을 내걸며 항의하고 나섰다. 복잡한 도심과 달리 공기가 맑은 지역에 새로 들어선 업소는 연기와 냄새 배출 형태의 부정적 외부효과가 크다는 것을 새삼 보여주었다.


제주를 목걸이에 비유하자면 목걸이가 고가인 이유는 구성하는 구슬 하나하나가 청정한 산과 바다, 신선한 먹거리와 같이 값진 것들이어서다. 그런데 제주산 돼지고기를 여기에 포함해야 할지 확실치 않다. 연관된 부정적 외부효과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잔인한 밀식 사육, 배설물과 악취 등 지역에서 양돈과 관련된 문제들이 뉴스 화면이나 통계 숫자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줄줄이 이어진 고깃집 간판들을 보며 돼지고기 먹는 것 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는 곳으로 전락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목걸이와 같은 사슬은 어떻게 끊어질까. 잡아당기면 제일 약한 고리가 부러져 끊긴다. 소위 '펀더멘탈'이 튼튼한 나라가 단기외채 과다와 같은 특정한 취약 부분(Weak Link) 문제로 경제위기를 겪는 나라들의 상황을 설명하는데 종종 쓰이는 비유이다. 지역에서 기른 돼지의 고기가 좋다 하지만 타지방과의 차별화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비슷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이 많아지면 업소들 간의 차별화도 어려워진다.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업소들이 얼마나 갈지 미지수이다. 작금의 식당 창업 모방이 쉬워 나타난 쏠림현상일까 걱정거리다. 일시적인 돼지 수요 급증이 꺼지면 지역 양돈업의 호황도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구잇집 난립이 어둡게 채색되는 데에는 최근 불거진 지역의 동물학대 소식이 기여했다. 끊이지 않는 양돈 관련 문제에 더해 얼마 전 도살 전 말 학대 실태가 뉴스를 타며 눈살을 찌푸리게 하더니, 최근에는 지역의 유기 동물의 사체를 재활용했다는 충격적인 소식도 있었다. 이런 부정적인 단편들이 켜켜이 쌓이며 자칫 제주가 육식 호사가들에는 명소이나 동물들에게는 잔인한 곳이라고 인식될까 걱정이 된다.  

먹을 것이 귀해 모든 동물이 식용이었으며, 동물학대 개념이 불분명 했던 과거 세대는 침소봉대(針小棒大)한다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 가계 지출에서 육류 구입 예산보다 반려동물 사료와 진료비가 더 많은 집이 드물지 않은 세상이다. 이런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여행이나 거주지를 평가할 때 직·간접으로 얻은 지역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영향을 미친다. 육류소비와 관련해서도 선진국들에서 식물성 고기와 같은 대체 식품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고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반려동물 수가 1000만을 넘은 요즘 제주가 사람들에게는 천당이나 동물에게는 지옥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면 부정적 여파가 장기화 될 것이다. 식용을 목적으로 사육하는 동물도 인도적인 방식으로 키워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예는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최근 국내 북쪽 지방에서 번지며 많은 이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아프리카 돼지열병은 열악한 국내의 양돈 실태를 새삼 일깨워준다. 온화한 날씨처럼 제주는 동물들도 부드럽게 대하는 곳이라고 차별화 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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