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덕순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논설위원

한국 사회에서 마을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공간이며 사회적 상호작용이 처음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뿐만 아니라 마을은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주고 개인은 마을에 대한 소속감과 애착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눌 때 지역 출신을 묻기도 하는데, 그만큼 마을은 사람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 마을의 최소단위가 바로 리이다. 

리는 지역사회에 기초를 두고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주민조직으로서, 자연재해나 외부의 위험에 공동으로 대처하고 마을일 등을 함께 하며 어려운 이웃을 공동으로 돕는 주민자치조직이다. 반면에 행정구역으로서의 리와 리사무소는 최일선 지방행정조직인 읍·면의 하부조직으로써, 행정시책의 원활한 추진을 돕는 행정 협력적 소지역 주민조직이다. 또한 리는 마을주민들의 공동의 관심사를 논의하고 함께 지혜를 모아 실행해 나갈 수 있는 최적의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천 공간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나라 리의 설치 근거는 '지방자치법'이며 제주지역에서는 2007년에 '제주특별자치도 리·통 및 반 설치 조례'를 제정했다. 동 조례 제6조에 '이장은 읍장, 면장의 지도 감독을 받아 리 관내 환경 개선 및 교통질서 확립 등 지원에 관한 사항, 각종 공익활동 협조 지원에 관한 사항, 주민자치센터 지원에 관한 사항, 지역개발사업의 추진 및 지원에 관한 사항,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위기가정 발굴 및 복지서비스 연계 역할 수행  등 복지업무 지원에 관한 사항, 그 밖의 법령에 따라 부여된 업무 및 읍·면 행정 수행에 필요한 사항 등을 수행한다'고 규정돼 있다. 

또한 이장은 법령상의 민방위 업무와 주민등록 전입신고 관련 업무, 민원사항 수렴 건의, 재해 및 방역예방 홍보, 가축통계 등 주민과의 개별적 접촉을 통해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일선행정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읍·면행정은 이장의 협조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하지만 이런 법적으로 규정된 역할도 중요하지만 함께 생활하는 마을주민의 대표로서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장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마을자원 개발을 통한 주민소득 증대를 도모하고 장·단기 마을계획을 수립하는 것 등이다. 특히 마을계획 수립은 그 과정 속에서 마을이 갖고 있는 자원의 가치와 마을에 대한 자긍심을 갖는 계기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계획 수립과정에서 마을주민들 간에 이루어지는 상호 소통과 논의는 '우리는 하나'라는 지역공동체임을 인식케 한다. 사실 리는 친밀감, 유사성, 호혜성 등의 연대감으로 강한 일체감을 가진 지역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사람 이동의 빈번성은 지역성을 근거로 했던 공동체의식을 희박케 하고 있다. 특히 최근 제주지역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 옴으로써 이주민과 원주민간의 새로운 마을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장이 그 중심적 역할을 주도해야 한다. 

마을이장은 행정조직의 말단으로서 역할도 수행하고 동시에 마을주민을 대표하는 이중적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마을 주민의 대표로서의 지위와 역할이 더 중요하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통합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마을의 중심적 인물이다. 이런 중요한 이장은  마을을 위해 자기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마을이장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희생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뿐만 아니라 마을 발전을 위한 사회적 교제비용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장은 다른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마을의 발전이라는 공공적 이익에 충실하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생활자치의 핵심주체로서, 특별자치도의 최일선 주민조직으로서, 리와 리장에 대한 합당한 위상과 역할, 그리고 이에 걸맞은 정당한 대우가 재정립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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