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성 ㈔한국농업경영인제주도연합회 회장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개발도상국(이하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기로 한 정부 결정에 농업계의 실망감이 가시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난 10월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 직후 "우리 정부는 미래에 WTO 협상이 전개되는 경우에 우리 농업의 민감 분야는 최대한 보호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협상할 권리를 보유·행사한다는 전제하에 미래 WTO 협상에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하면서 농업 분야 WTO 개도국 지위 포기 결정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결정이 농업 분야의 WTO 개도국 지위 포기가 아니라는 점을 특별히 강조한다. 개도국 지위 포기가 아닌 미래 협상에 한해 특혜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WTO 미래 협상에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인 만큼 당장 농업 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결정이 미래의 WTO 협상부터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협상 효력은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과 향후 새로운 협상이 재개돼 타결되려면 상당히 장기간 소요될 것으로 보여 시간적 여유와 대응 여력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농업 분야의 피해가 당장 발생하지 않는다는 정부와 달리 농민단체들은 개도국 지위포기 철회를 주장하며 이달 중 대규모 항의집회까지 예고하며 반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정부가 지난 10월 25일 개도국 지위포기 결정을 하면서 농업피해대책을 일부 내놓았지만, 농민단체들은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농업계의 반발 이면에는 정부의 진정성이 떨어지는 농업피해 대책도 한몫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대책을 발표하면서 공익형 직불제 예산 확대, 농어촌 상생협력기금 관련 기업 인센티브 강화, 청년농지원 등을 내세웠다. 

특히 내년도 농업예산을 최근 10년 내 최고 증가율인 4.4% 늘어난 15조2990억원으로 편성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가 전체 예산은 513조5000억원으로 9.3%나 늘어 오히려 농업 홀대론을 일으킨다. 국가 전체 예산에서 농업예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갈수록 줄어 2.98%에 불과하다.

이는 그동안 시장개방 이후 정부가 내놓은 농업보호대책들이 생색내기에 그쳤던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농업예산 확대는 정부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가늠자이다. 이전처럼 위기만 모면하고 보자는 식의 대책으로는 농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특히 제주지역에서 농업은 산업구조와 인구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2% 이상이고 생명·기반 산업이라 평가는 받지만 농업분야 예산은 거꾸로 줄어들고 있어서 매번 현장 농민들에게 박탈감만 주고 있는 현실이다.

제주도 예산 증가율을 보면 지난 2016년 7.4%, 2017년 8.5%, 2018년은 13% 증가했다. 하지만 농업 분야가 차지하는 예산을 보면 전체 예산 증가율과 정반대로 2016년 8.1%, 2018년 7.2% 감소했다. 올해 2019년 예산안에서는 역대 예산안 가운데 가장 적은 7%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제주농업은 농업에 녹아 있는 제주의 가치와 지역공동체 존립과 결부되는 당면한 민생현안뿐만 아니라 관광산업과 연계해 외지자본의 투기성 개발이 아니라 제주도민이 중심축이 돼 6차산업을 만들어 나아갈 중심산업이다.

중앙정부는 개도국 지위포기 결정을 철회하든지 그게 현실적으로 힘들다면 농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농업예산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공조체제를 강화해 농업예산 비중을 높이는데 사활을 걸고 제주도는 제주농업의 국가적 월동채소 공급처와 제주지역의 중심산업이라는 설득을 통해 중앙정부의 예산확보와 제주도차원의 농업의 예산 비중을 높여 개방화에 따른 피해대책을 강구해  농업계의 요구를 적극 수용 할 것을 간곡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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