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오히예사 「인디언의 영혼」

입동도 지나고 겨울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세월의 흐름은 참으로 무상하다. 씨를 뿌린지 엊그제 같은데 들판에서는 일 년 동안의 수확이 한창이다. 한해를 마감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지만,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은 그리 풍요롭지 못한 듯하다.  

영혼은 정신과는 구별되는 일종의 생명의 원리로 알려져 있다. 영혼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며 인간 감정이나 지성과 같은 의식작용을 지배한다. 이를테면 영혼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빛이나 양심의 본질을 가리키는 은유적 상징의 언어이다. 영혼의 힘, 즉 내면의 정신적 에너지를 추구하는 사람은 이런 언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을 생명의 본질로 간주해 육체는 단지 영혼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설파한 대로 오늘날 영혼 없는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영혼 없는 인간'이 많다는 것은 동물적 충동과 본능에 따라 살아가는 인간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영혼을 내팽개치고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나 흔하다. 예사로이 자신의 양심을 속이며 거짓말을 하고, 오직 자신만이 살기 위해서 남을 해치고, 자연과 사람을 이용가치로만 생각한다. 

옛날 미국의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가다가 이따금 자기가 달려온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보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말이 지쳐서 쉬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혹시 너무 빨리 달려와서 자기의 영혼이 뒤쫓아 오지 못하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배운 것도 아는 것도 없는 인디언들이 이런 지혜를 생각했다는 사실은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디언의 삶의 태도에서는 문명의 첨단을 달리며 살아가는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인디언의 삶의 태도

'인디언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히예사가 쓴 「인디언의 영혼」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인디언의 삶의 방식과 사상을 실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디언의 자유로웠던 야생의 삶을 아름답게 그려내면서, 자연과의 영적인 결합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삶과 정신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자연과 어울린 신비롭고 환상적인 삶에 대한 의지와 영적인 교훈은 과학기술과 자본의 힘에 의존해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에 수많은 교훈을 던져 준다. 인디언들의 교육 방식, 사회의 규율, 인디언 여성들의 태교, 사랑과 우정, 종교적 의식 등 인디언의 삶을 다양한 측면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오히예사는 수우 족 인디언으로 태어나 전통적인 인디언 생활 방식으로 성장했고, 아버지에 의해 백인사회에 편입했다. 그는 명문 보스턴 의대를 졸업하고 최초의 인디언 출신 의사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나 백인 기병대가 '운디드니'라 불리는 작은 골짜기에서 수많은 무고한 인디언들을 학살한 '운디드니 대학살 사건'을 바라본 이후, 인디언이 지켜온 고귀한 정신과 사상을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기 시작한다.

물질의 삶, 영혼의 삶

「인디언의 영혼」은 우리에게 소중한 삶의 지혜를 가르쳐준다. 인생은 백인들처럼 '산을 오르는 불 배(증기 기관차)'를 타고 숨 가쁘게 달리는 것이 아니라 느긋하게 평원을 걸어 다니며 천천히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인간의 삶은 '소유하는 것' 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친다. 무엇이든 금전으로 환산해 가치를 따지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이라 여기는 삶의 태도를 인디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디언들은 거대한 숲의 정적 속에서 산책하며 사랑, 평화, 자비심 같은 영혼의 순결을 키워나가고자 했다. 오염되고 타락한 현대문명 속에서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인디언들이 간직한 거와 같은 아름답고 맑은 영혼을 간직하는 길이 아닌가 한다. 

수확의 계절에 앞만 보고 달릴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이 제대로 따라오고 있는지 한 번쯤 뒤돌아볼 일이다. 

허상문

「오늘의 문예비평」(1997) 평론을 발표, 「문예미학」 편집위원을 거치면서 평론가로 활동.

문학평론집 「프로메테우스의 언어」, 수필집 「낙타의 눈물」 등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신곡문학대상, 한국에세이평론상을 수상한 바 있음.

문학평론가·수필가로 활동, 현재 영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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