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영 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챕터 대표

지난 7월 19일 OECD는 국제금융제도에 관한 보고서를 한편 공개했다. 36개국을 회원국으로 하여 글로벌 경제 성장, 개발도상국 원조, 무역의 확대 등을 목적으로 경제 정책의 조정과 무역 및 산업정책의 검토, 환경 문제 등을 논의하는 이 기구에 우리나라도 1996년 가입하여 국가 발달사에 한 획을 그은 바 있다.

그런데 멀리 파리에 있는 이 기구가 공개한 "유해조세관행-회원국 검토 결과(Harmful Tax Practices-Peer Review Results)"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유라시아 대륙을 건너 한반도를 종단하여 닿게 될 제주섬의 국제자유도시로서의 미래 비전과 관련하여 간과해서는 안될 내용을 담고 있다. 다름 아니라 제주도가 지난 10여년 넘게 도입을 검토 또는 추진해 온 역외금융업에 대한 OECD의 작업 결과물이 최신판으로 실려 있는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역외금융업이라 하면 생소하게 들릴 지 모르겠으나, 문자 그래도 독해해도 감은 잡힐 수 있다. 바로 역외(offshore) 거주자(법인 또는 개인)가 역외에서 조달한 자금 또는 기업활동 수익이 자국 역내에 설치된 특정 금융중심지를 기점으로 역외에서 외국통화표시 거래를 할 때, 거기서 파생되는 이익에 대해서는 비과세 하거나 현격히 낮은 세율로 과세하는 제도라 이해해도 큰 문제는 없다. 이 활동을 보장하는 역외금융중심지제도(offshore financial center regime)가 제주도에 구축되어 있다면, 예를 들어 제주에 단출한 법인을 설립한 일본기업은 옌화 자금을 조달한 뒤 제주를 거점으로 우리나라 역내가 아니라 역외지역인 홍콩, 바하마, 런던 등지에 걸쳐 투자 또는 기업활동을 전개하여 소득을 창출하게 된다. 물론 제주는 이 소득에 대해 과세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극히 낮은 세율을 적용하게 될 것이다. 이 일본 기업이 제주 등지에 쌓아 놓을 돈다발은 일본의 문지방을 넘기 전에는 실질 과세를 피할 수도 있게 된다.

특히 이동성이 강한 소득인 이러한 유형의 소득에는 이자, 배당, 양도소득, 사용료 소득이 대표적이다. 이동성이 강한 소득이 자유로이 넘나들며 국제 금융시장과 기업활동을 촉진하는 곳이 가까운 데로는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라부안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국제자유도시로의 발전을 비전으로 품은 제주 역시 사람, 상품,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편의가 보장되는 동북아 중심지로 기능하기 위해 홍콩, 싱가포르 식의 금융제도 도입 가능성을 오랜기간 탐색해온 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문제는 이동성이 강한 소득의 획득 및 축적이 그 자본이나 기업활동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국가의 정당한 과세주권을 침해하거나 건강한 시장질서를 해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OECD 등은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도처의 역외금융중심지에 대해 단속의 고삐를 바짝 틀어쥐어 왔다.

7월의 OECD 보고서는 자국시장이 아니라 역외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외환표시 거래에서 파생된 소득에 대해 무과세 또는 저율과세를 하는 대표적 역외금융중심지에 대해 기존 제도의 개선 또는 철폐를 권한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평가를 받는 측에서는 권고에 따르지 않으면 이른바 '유해조세체제'라는 불온한 딱지가 붙게 되기 때문에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보고서에 따르면 홍콩, 싱가포르, 라부안 등 가까운 금융중심지들도 기존 제도를 개선해서 오명을 벗거나 개선이 불가능한 경우는 아예 관련 제도를 폐지하는 쪽을 택했다. 

그런데 OECD가 주도한 이러한 제도적 변화는 오히려 제주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창을 열어주고 있다. 경제적 실질성의 원칙이 유해성 판정의 주요 기준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즉 적정한 투자와 의사결정 수행 인력이 상주하는 기업이 집적하는 금융중심지의 경우 제도적 특례에도 불구하고 유해조세체제 판정을 피할 수 있다는 말이다. 홍콩의 정치적 격변과 싱가포르의 높은 물가 등을 고려하면 제주가 다국적기업 지역본부 유치 제도 등을 도입하여 양국에 집중된 4000개사가 넘는 지역본부들 가운데 일정수를 제주로 유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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