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순덕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논설위원

한 장의 달력이 덩그러니 남는 시기가 왔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 자신을 되돌아보며 스스로의 노력으로 살아왔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수고로움 덕분인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시간을 투자하거나 몸을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으려는 것은 불로소득을 기대하는 심리이다. 하다못해 거리를 지나다니다가 행사장에 가서 조그마한 기념품을 받으려고 해도 그들이(주최측) 요구하는 질문에(설문지 등) 답을 해야 한다. 가끔은 설문지에 응답하는 것보다는 대가로 주는 상품을 갖고 싶은 마음에 설문지에 체크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시간이나 생각을 제공한 대가로 받는 것이니까 수고로움의 값이라 할 수 있다.     

제주지역에는 무료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많은 편이다. 예술 활동 참여든 현장답사든 행사를 제공하는 쪽은 많고 참여자는 한정되어 있어서 '참가만 해주세요'라는 분위가 보편화되어 있다. 이런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유료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경우 시간과 돈은 물론 어떠한 노력도 아쉬워하지 않는다. 

제주도 곳곳에서 행해지는 행사와 축제는 많은 편이고, 자신의 취향에 맞게 쫓아다니기도 버거울 정도이다. 거의 모든 행사의 공통점은 체험부스가 마련되어 있다. 사람들은 행사장을 돌아다니면서 그 누군가의 수고로움은 고민하지 않고 공짜 체험을 당연하게 여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체험활동을 할 때,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돈을 지불하고 체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우리들이 다른 사람의 수고로움을 인정하는데 익숙해지려면 어린 시절부터 경험할 기회가 많아야 한다. 이런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체험비를 지불해야 하는 경우, 사람들은 그 앞에서 심각한 고민을 한다. 이 프로그램을 신청할 것인지, 말 것인지…. 

여러 행사에 참여해 보면 무료 체험에는 참여자가 많아서 정말 부지런하지 않으면 순서가 돌아오지 않는다. 한번은 그리기와 만들기 체험장을 가 봤는데 재료비와 프로그램만 봐도 행사장 밖에서 진행했다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주제였다. 그래서 참가비가 유료인지 무료인지 확인해 보니 내 예상대로 무료였고, 활동가들의 노력이 안타까웠다. 공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어린이, 어른 모두) 대가를 지불하고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하라고 한다면 그 결과가 어떨지 상상이 된다.   

한번은 참가비를 지불하고 체험하는 부스가 있어서 살펴보니 어린이 대상 음식 만들기 체험이 주를 이뤘다. 본인이 직접 만들어서 먹을 경우 돈을 지불한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물건을 만들어보거나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할 경우 대가를 지불하는 데는 인식해 보인다.  

내 입에 즐거운 것은 가시적인 먹거리가 눈앞에 보이므로 체험비를 지불하면서도 참여하는데, 마음이 행복한 것은 비가시적인 먹거리라 대가를 지불하는데 낯설어 한다.

행사 주최측에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소기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유인책을 제시한다. 이에 비해 사람들의 입맛이 까다로워지고, 기대치도 높아지고 있어서 다양한 사람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유인책도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능하면 유료 프로그램이 일상화되는 사회를 만드는데 우리 모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 어떨까? 우리들의 습관이 하루아침에, 단기간에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행사 주최측이 최소한의 참가비를 받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관객으로 참여하는 우리들도 무조건 입장료를 지불하는 행동이 필요하다.

그 누군가의 수고로움을 가치 있게 대접해 줄 때야 비로소 다른 사람의 시간과 노력을 소중하게 인정할 수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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