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택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최근 우리를 둘러싼 정치경제, 교육문화, 과학기술, 생태환경 등의 문제가 예사롭지 않다. 오늘날 관련 전문가들은 많은데 그것들이 풀리지 않는 이유는 지금까지 통용되던 방식으로는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 국가, 세계가 안고 있는 현안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전혀 다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유네스코에서는 2002년부터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을 세계철학의 날로 정해 철학교육을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보다 합리적이고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철학(哲學)'이란 말은 그리스어로 '지혜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필로소피아(philosophia)를 번역한 것이다. 보통의 경우 우리는 자신들이 아는 상식이나 지식, 믿는 관습이나 신념, 따르는 전통이나 제도 등을 기준으로 어떤 사태나 상황의 진위와 시비를 가린다. 하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상식과 지식, 관습과 신념, 전통과 제도들이 과연 당연한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철학은 지금까지 자명하고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을 검토해보고 더 나은 대안을 찾는 활동이다.

오늘날 교통 통신의 발달과 거대자본의 거센 물결로 지역문화들이 점차 사라지고, 환경오염과 기후변화가 심화되면서 인간을 포함한 지구 생명체들의 존립이 위협받고 있다. 건강을 위해 생명조작을 하면서 생명의 존엄성 자체가 흔들리고, 풍요를 위해 경제성장을 추구하면서 생명의 터전인 지구환경이 파괴되고 있으며, 편리를 위해 인공지능과 로봇이 등장하면서 정작 인간이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과학기술과 경제성장도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인데, 오히려 그들로부터 역습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가, 삶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가, 진정한 행복과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사실 이미 수많은 동서양의 철학자들이 그에 대한 해답을 찾으면서 일생을 던졌고, 나름의 답들을 우리에게 남겼다. 그래서 우리는 동서양의 철학적 고전을 읽고 배운다.

사실 모든 철학사상은 당대에 가장 시급한 문제들을 푸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고, 그 시대의 지식수준을 반영한 것이기에, 시대와 사회의 산물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전이 전하는 지혜를 배워야 하지만, 그것으로 오늘날 우리의 문제들을 푸는 데는 한계가 있다.

현대사회에서 지역문제와 세계문제는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서양사상이나 사조를 빠르게 수용하여 우리의 현안문제를 풀어보려는 시도를 많이 한다. 하지만 그러한 사상이나 사조도 서양이라는 문화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것이어서, 당장 우리의 현안문제를 푸는 데는 한계가 있다. 어떤 상황이나 사태의 진위와 시비는 보편적 기준만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감안하여 판정되어야 한다. 철학을 배우려 하지 말고 철학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철학은 가장 오래된 학문이지만, 언제나 새로우면서 가장 젊은 학문이다. 우리는 철학을 통해서 논리적 분석력, 합리적 비판력, 종합적 통찰력, 창의적 해결능력을 배운다. 그러한 능력들은 다원화된 민주사회와 앞날을 가늠하기 힘든 4차산업혁명 시대에 더욱 필요한 덕목들이다. 철학은 보편적 학문이지만, 구체적 삶 속에서도 적용되어야 한다. 제주사회의 현안문제들을 근본적으로 바라보고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제주도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도 철학이 필요하다.

철학은 제주지역의 현안문제뿐만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푸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 제주사회가 한층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려면, 철학이 제주지역에서 활성화 되고, 학교에서 철학교육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연령, 계층, 직업에 따르는 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맞춤형 철학강좌가 개설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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