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7일 제주종합경기장 광장에서 열린 마늘산업과 농업사수를 위한 제주농업인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한·중 마늘협상" 철회를 요구하며 화형식을 갖고 있다.<부현일 기자>
 정부의 ‘중국산 마늘수입 연장 불가’ 발표 후 농촌의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내년 중국산 마늘수입으로 당장의 위기에 직면한 마늘농가 뿐만 아니라 감자·양배추·양파·당근 등 모든 농가가 불안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내년부터 마늘가격 하락을 우려, 재배면적을 축소할 경우 타 작물에 대한 잇따른 연쇄 도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농업붕괴로 폐농이 속출하는 등 농촌붕괴의 사회문제로 비화될 것을 우려, 농가들은 현행 마늘재배면적이 유지될 수 있는 현실적인 정부대책 수립을 주문하고 있다.

△마늘=파종시기가 보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농심은 허탈감과 답답함을 드러내고 있다. 또 정부의 마늘정책에 대한 불신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용철 대정읍 하모3리장은 “마늘 회생은 중국산의 수입연장 외엔 없다”고 단정했다. 다른 농가들도 “중국산 마늘의 수입 연장”을 거듭 강조했다.

 지난해 정부의 최저 수매가격은 ㎏당 1250원. 하지만 중국산은 ㎏당 900∼1000원으로 전망된다. 중국산 마늘의 품질은 떨어지지 않는 반면에 가격은 훨씬 저렴하다.

 이 때문에 농가들은 ‘마늘 경쟁력=가격 경쟁력’으로 파악하고 있다. 결국 마늘의 판매가격을 ㎏당 1000원대로 낮추기 위해 경영비의 67%가량을 차지하는 인건비·종자대의 절감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셈이다.

 마늘 파종기·수확기·쪽분리기·선별기계 등을 시급히 대량 상용화시켜 인건비를 줄이는 한편 주아재배를 통한 종자의 대량 공급 등으로 종자대를 줄이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게 일선 농협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내년부터 당장 밀려오는 중국산을 감당하기에는 사실상 시간이 태부족하다.

 김봉필 안덕면 사계리장은 “어떤 농산물이라도 한번 무너지면 다시 일어설 수가 없다”며 “수입시기를 반드시 연장해 가격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가들은 특히 “정부의 마늘 종합대책은 극히 형식적”이라며 “이 때문에 정부가 마늘산업을 포기한 인상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맥주보리=맥주보리 농가들도 최근 뒤숭숭하기는 마찬가지. 올해 맥주보리 계약재배면적을 턱없이 적게 확정한 농림부가 2003년 물량을 또다시 줄였기 때문이다.

 차대진 안덕면 서광동리장은 “올해 잦은 비등으로 인해 보리의 상품성이 감소해 농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여기에다 정부가 2700여t의 재배물량을 줄이는 것은 농심을 외면하는 처사”라고 밝혔다.

 농가들은 또 “대체작목은 개발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수매물량을 줄이는 것은 다른 겨울 채소류의 과잉생산을 부추길 수 있다”며 “2003년산 맥주보리의 물량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또 마늘의 대체작목이 보리와 양파 등으로 꼽히면서 농가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자칫 마늘 재배면적이 보리와 양파 등으로 몰릴 경우 ‘엎친 데 덮친 격’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자=남제주군에 따르면 중국은 식물방역법상 감자암종병·감자갈쭉병·감자씨스트선충 등의 발생지역으로 수입금지국이다. 또 세척·검조 등의 검역 문제로 인해 당장 중국산 수입은 어려울 전망이다.

 농가들은 이에 따라 우량 씨감자 공급과 감자 가공공장의 설립 등 경쟁력 강화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대정읍 감자농가인 허태석씨(41)는 “가공공장의 설립으로 상품성이 떨어지는 감자를 수매·가공함으로써 유통 물량이 감소된다”며 “이로 인해 상품 가격의 상승 등 전체적인 가격 지지효과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근=우리나라 당근소비량의 40%를 생산하고 있는 구좌읍은 최근 3∼4년 동안 연이은 가격불안정으로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올해 1월만 해도 조생양파인 경우 1상자(20㎏)당 1만1000원∼1만2000원선을 유지하다 2∼3월 들어 5000∼6000원 미만으로 떨어져 물류비를 제외하고 나면 결국 농가에는 1000원도 채 돌아오지 않기도 했다.

 당근농가들은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생산력 증대를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펼치고 있다.

 토양개량을 위해 토지가 알칼리성 성분을 강화하는 규산공급이나 토지 표면에 모래를 공급하는 등 노력으로 실제 과거 14㎏(1평)을 생산하던 토지에서 16㎏까지 끌어올려 면적당 생산량이 타지역에 비해 월등한 수준이다.

 또한 수입당근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구좌농협에서는 5년 전부터 ‘씻은 당근’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적정생산량.

 10년 이상 당근농사를 짓고 있는 김명환씨(41·한동리)는 “문제는 중산간까지 재배해 생산량이 크게 증가하는 것”이라며 “토질에 맞는 작목을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성집씨(구좌농협 판매과장)는 “당근의 과잉생산으로 지난해부터 마늘생산을 늘려나가고 있는 추세였는데 상황이 이렇게 급변해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며 “농업정책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대체작목이니 대안이니 하는 것은 빈 껍데기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배추=지난해 795㏊의 양배추를 재배했던 애월읍지역은 양배추 가격폭락으로 290농가가 수확과 동시에 산지폐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1평당 3000원은 보장돼야 적자를 겨우 면하는데도 산지폐기는 666원 꼴.

 곽지리에서 양배추를 농사를 하는 홍성준씨는 “해마다 종자나 비료, 약값은 오르는데 농산물 가격은 바닥을 면치 못하니 어떻게 해야 하냐”며 “정부나 농업단체에서는 말로만 농업 살리기 정책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짓는 현장을 찾아와서 대책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애월농협 강영식씨는 “농협에서도 수출 등 다각도로 판로를 개척하고 있지만 단위농협 자체적으로 현실화하는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며 “주생산지별 수출을 위해 생산자·정부·농업단체가 함께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파=도내 양파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한경면은 산지폐기로 1평당 2380원을 보상받았다.

 양파와 마늘, 감귤, 양배추 등 고른 생산을 하고 있는 이 지역 주민들은 해마다 계속되는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희망을 잃고 있다.

 농업이외에 별다른 소득원도 없는 상황에서 해마다 되풀이되는 농산물 가격폭락과 임시방편에 불과한 농업대책들.

 양인보씨(35·고산리)는 “힘들지만 농업을 지켜오고 있는데 희망이 있어야 일을 할 것 아니냐”며 “마늘정책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농업을 지키겠다는 정부의지가 없는데 농민들이 누구를 믿고 농사를 짓겠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대책마련 어떻게 해야하나=구좌농협 양성집씨는 “농산물 가격이 한 작목에서 폭락하면 상대적으로 다른 작목이 가격이 좋았는데 이제는 모든 작목이 1년 내내 생산되기 때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 또 제주지역인 경우 물류비가 타지역에 비해 3∼6배 이상 차이가 나는데 물류비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 꼭 필요하다”며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적정생산을 통한 가격안정인데 농가들이 대체작목을 선택할만한 상황이 아니다. 대체작목 자체가 가격폭락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이창민·변경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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