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 취재2팀 차장

'필리버스터(filibuster)'는 국회에서 다수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소수당이 벌이는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행위를 말한다. 수적 우세를 이용해 법안, 정책 등 특정 안건을 통과시키려 할 때 장시간 발언이나 무제한 토론을 하면서 표결을 지연시키거나 막는 합법적 표결 저지수단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도 대부분 시행하고 있다. 용어 자체는 16세기의 '해적선' 또는 '약탈자'를 의미하는 스페인어에서 유래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64년 처음으로 필리버스터를 이용했다. 당시 야당 초선 의원이었던 김 전 대통령은 동료 의원의 구속 동의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자 이를 막기 위해 5시간 19분 동안 발언하면서 안건 처리를 무산시켰다.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은 더불어민주당이 2016년 테러방지법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2월 23일부터 3월 2일까지 총 38명의 의원을 통해 총 192시간 넘게 진행한 사례다. 마지막 주자로 나선 이종걸 의원이 12시간 31분이라는 역대 최장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필리버스터는 1973년 국회의원의 발언시간을 최대 45분으로 제한하는 국회법이 시행되면서 사실상 폐기됐다가 2012년 국회법(국회선진화법)이 개정되면서 부활됐다. 개정 국회법(제106조2)에 따르면 본회의에 부의된 안건에 대해 무제한 토론을 하려는 경우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무제한 토론을 할 수 있다. 의원 1인당 한번만 토론자로 나설 수 있고, 더이상 토론자로 나설 의원이 없으면 무제한 토론이 끝난다. 또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무제한 토론의 종결을 원하고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도 토론이 마무리된다. 다만 무제한 토론을 하던 중 회기가 종료되면 해당 법안은 자동으로 다음 회기 첫 본회의 표결에 부쳐진다. 

자유한국당이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모든 안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필리버스터로 묶여버린 법안만 190여건이다. 심지어 '민식이법' 통과 여부를 두고 여야간 '네 탓' 공방까지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교통사고로 희생된 아이들의 이름을 딴 '해인이법', '한음이법', '하준이법', '태호유찬이법' 등 다른 어린이 안전사고 법안도 현재 국회에 계류중이다. 정쟁에만 눈이 멀어 아이를 잃은 부모의 절규와 눈물을 보지 못하는 국회가 과연 국민의 마음을 진정으로 보듬어 줄 수 있을지 의문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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