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일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지난달 21~22일 '제주 4·3과 UN, 그리고 미국'이란 주제로 제9회 제주4·3평화 포럼 행사가 열렸다. 그동안 평화 포럼 행사에 참석하여 많은 목소리들을 들었지만, 이번 발표에서 존스홉킨스대학교 제임스 퍼슨 교수의 솔직한 표현을 듣게 되어 반가웠다. 

제임스 퍼슨 교수는 "한국의 분단에 미국이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하지만, 한국의 분단에는 일본의 책임이 크다. 일본이 남북통일을 반대했다"고 말했다. 1948년 5월 10일 남한 단독 선거로 남쪽에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설립되고, 북쪽에는 1948년 조선최고인민회의 선거로 1948년 9월 9일 조선인민공화국이 설립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국토가 분단되어 영토와 국민이 분리되어, 남북분단의 참극과 고통을 껴안고 산다. 미국 센트럴미시간대 호프 메이 교수는 1948년 제주 4·3 사건은 어느 하루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제주 4·3은 4월 3일에 발생한 단순한 사건이 아니고, 7년간이나 지속되었다.

1948년 11월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한 이승만 대통령이 집권한 시절이다. 4·3은 6.25 한국전쟁 이전에 시작되었고, 전쟁 후 1954년 9월 21일에 끝났다. 존 메릴 교수는 '4·3'이란 날짜에 힘주어 "섬 주민들이 1948년 4월 3일 남쪽에서 계획된 선거에 반대하여 봉기하였다. 제주 4·3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미군의 정보보고뿐만 아니라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TOCK), IC 보고문서도 살펴야 하기에, 어둡고 슬픈 복잡한 숲을 헤쳐 나가는 일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6·25 한국전쟁은 북한인민군의 침략으로 남쪽 한국군 병사와 유엔군이 참전한 전쟁이다. 그 와중에서 제주 '4·3'은 더 비화(飛化)됐다. 

아프고 슬픈 비극의 '4·3'! 그 의미와 역사를 새롭게 조명(照明)하자. 4·3 70주년을 맞아 '4·3 정명 운동이 일자, '4·3' '4·3 사건', '4·3 희생', '4·3 학살', '4·3 항쟁, '4·3 평화'라는 이름이 제시됐다. 어느 게 '바른 이름'일까. 

역사적 맥락에서 '4·3 사건'으로, 원인과정에서는 '4·3 항쟁'으로 부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4·3을 인과론과 목적론을 아우르는 정명은 없을까하고 생각해본다. '4·3'이란 숫자는 4=사(死·죽음), 3=삼(生·삶)으로 보면 '삶과 죽음(生死·생사)'의 뜻을 담는다.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놓인다.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해원과 상생의 길을 찾아 제주 평화를 이루는 게 염원이라면, 이 땅에 도민의 행복을 추구함이 대승의 길이 아닐까. 미움으로는 미움을 이길 수 없다. 관용으로 화해와 상생을 찾자.  

영령들께 삼가 명복을 빌면서, 지난날의 비극과 원한에만 슬퍼하기보다는 후손을 위하여, '4·3 평화'로 부르자. 이미 봉개동에 조성된 4·3 평화 공원의 이름이 붙여진 이상 그 뜻과 정신을 살리는 게 뜻이 깊다. 하나의 방편으로 '4·3 유족회'는 '4·3 평화 유족'으로 고쳐 부를 수도 있다.

제주 도민의 코드네임에 '평온을 붙여 '제주4·3평화'로 부르고 싶다. 어찌 보면 '4·3 평화'는 살아서는 패자요, 죽어서는 승자가 되다. '4·3 평화'란 명칭은 원인론(지난 역사)과 목적론(후손을 위한)을 녹여내는 호칭이 되리다. 

이번 학술발표에서 '말 표현' 특히 용어의 중요성을 또 한 번 실감한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으로서 남북 분단이 된 상태에서 '한반도'란 용어 사용은 더더욱 분단을 고착시킨다. 일본이 조작한 '한반도' 용어를 맹목적으로 쓸 게 아니라 쓰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남북 분단의 원인이 미·소·중·일과 남한과 북한의 정치적 투쟁이냐, 종교적 투쟁이냐, 인종적 투쟁이냐를 따질 때, 결국은 '세력 싸움'이다. 지금까지 '제주 4·3'은 양쪽 세력 다툼의 소용돌이 속에서 흘러왔다. 어찌 보면 제주 '4·3'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빚어진 세력 싸움이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공산주의자를 찾아갈 까닭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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