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홍석 이학박사, 전 동국대교수 겸 학장·논설위원

광복이후에 '떠돌던 말'이 있었다. '미국사람 믿지 말고, 소련사람에게 속지 말라'는 내용이다. '소리음(音)과 연계한 나라표현'이더라도, 오늘의 시대상(時代相)과 '별개일 수 없는 연관성'을 갖고 있다. 교훈적 암시로 다가오는 내용임으로, 구전(口傳)에 담겨진 의미와 함께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점검의 필요성을 느끼게 만든다.

소련은 최근에 중국과의 합작으로 '한국영공을 비행'하는 한편, 미국은 한국방위를 위한 '부담금으로 6조원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어느 것이나 '군사력과 연계된 점'에서 같더라도 '방법에서 차이'를 보인다. 전자가 '무력에 의한 침공'이라면, 후자는 군사력을 담보로 삼은 장사수법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시각으론 모두가 '부정적(negative)으로 비쳐'지고 있다.   

한국영토는 반도(peninsular)와 부속도서로 구성되어 있다. 대륙과 해양사이에 '가교(架橋)역할을 해온 것'도, 이런데 연유한다. 다리(bridge)는 '양안(兩岸)을 향해서 원활하게 소통'할 경우,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충돌이 빚어질 때는 '차단(遮斷)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태평양전쟁시대로 소급할 때, 한반도와 부속도서의 경우 '일본의 식민지'로서, 차단막이 되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남쪽바다를 통해 미군(美軍)이 건너왔고, 소련군은 북쪽의 만주를 거쳐 한반도를 향해왔다. 이것이 '열강의 대결구도'를 낳게 만들었다. 이때의 분계선은 38선이고, 한 때에 미소양국에 의한 신탁(信託)통치시대를 열게 했다. 일제침략에 대하여 종지부를 찍는 대신, 남북분단과 더불어 '외세지배시대를 재현'하게 됐다. 여기에다 6-25를 기해서 '북한의 남침시대'로 이어졌다. 

북한의 배후에는 소련이 있었다. 그럼으로 남한과는 '국경을 맞닿으면서 적대(敵對)관계'에 놓이게 됐다. 이런 '굴곡의 역사가 계속'되었지만, 양국관계가 모두 부정적인 것만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고종황제가 선호해온 원수(元帥)복이며, 서울대변원에 설치된 시계탑은 '러시아에서 도입된 문화형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련은 북한에 대한 통치이념과 정치체제를 달리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남북 간에 대립국면'을 낳게 만들었다. 

그런 결과는 '38선 너머에 자리한 북한'의 경우, 소련위성국가로 변신하며 '공산체제를 도입'하는 한편, 소련을 종주(宗主)국으로 삼게 되었다. 여기에다 소련위치는 북극으로 치우쳤고, 습한(濕寒)기후에 의해서 '주민기질마저 점액질(粘液質)'로 이루어졌다. 이런 유형은 감정이 차갑고 활기가 적으면서, 자극에 대한 반응도 둔하다. 하지만 강한 의지와 끈기가 장점이 됐다. 

요약하면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음흉한 모습'이면서, 음지(陰地)식물처럼 '비정상적 행태'이다. 이번에 울릉도상공을 비행하고도 '영공을 침공하지 않았다'는 발뺌이야 말로, 이를 입증하는 '음습(陰濕)한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련사람에게 속지 말라'는 구전(口傳)이 나오게 되었는데, 이것도 소련과의 접촉과정에서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하여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체제의 표본국가'로 위상을 굳혀왔다. 한국동란 때에는 우리와 '남침세력을 방어해온 혈맹'관계에 놓였다. 하지만 최근의 트럼프정부는 베니스상인처럼, 매사를 '돈으로 환산하려는 이기(利己)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윤리규범을 중시'해온 한국으로써, 어안이 벙벙해질 것은 당연하고 '미국사람 믿지 말라'는 전언(傳言)에도, 공감하게 됐다. 

서부개척시대를 거치며 금광욕구(gold mania)에 불타온 나머지 '일확천금(一攫千金)만을 앞세워'온 내력과도 관계된다. 그래서 주변국들은 '양키(yankee)로 비하(卑下)'해왔건만,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돈에 우선해온 것'이 오늘로 이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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