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영 제주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소장·논설위원

요즘 재조명 받는 가수가 있다. 신드롬이라 불릴 만큼 인기를 불러일으키는 이는 '슈가맨'이라는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소환된 가수 양준일이다. 흥미롭게도 대중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히 시대를 앞서갔던 세련된 노래와 스타일 때문만은 아니다. 영어강사, 의류사업자로 재도전과 실패, 하루 14시간 서빙을 하며 연예인이 아닌 삶을 살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희망을 건져 올린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양준일은 "내려놓는 것이 힘들었지만, 내려놓을 수 있으면 그로써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라고 말한다. 실패한 과거에 집착하기보다 미래를 꿈꾸라는 메시지를 담고 최근 발간된 그의 에세이는 요즘 대세인 '펭수'의 인기도 제치는 양상이다.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서 일하다보면 다양한 사연의 구직자들을 만나게 된다. 한때는 잘나가던 CEO였거나, 높은 직위에서 일했던 신중년들도 있다. 반면 당장 취업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든 생계형 구직자들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일을 하려는 욕구다. 하지만 불경기로 악화되는 고용시장에서 원하는 사람 모두가 취업하지는 못한다. 직무 적합성과 조직 구성원들과의 조화 등 기업을 비롯한 고용 주체들의 요구 조건에 맞출 수 있어야 가능성이 높아진다. 

중장년의 재취업은 물론 어느 분야에서나 선택을 받기 위해선 경쟁력, 즉 '나만의 강점'을 가져야 한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전문 직업훈련을 받거나 자격증 취득은 재취업의 무기가 된다. 경력을 활용하거나 취미를 전문적인 일로 발전시켜 성공하는 중장년들도 있다. 

그리고 기대를 낮추어야 한다. 재취업인데 관리직으로 시작하기는 힘들다. 취업을 하더라도 '현역' 당시 사회에서 받았던 대우와 현실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쉽지는 않지만 내려놓기가 새 출발의 시작이다. 내려놓을 수 있어서 성공한 양준일의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상담을 통해 새로운 일경험을 쌓고 인생2모작을 성공적으로 시작한 이들이 적지 않다. 대기업 임원에 이어 CEO까지 다양하고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던 김 선생님은 사회공헌 일자리인 '이음일자리'를 통해 커리어 컨설턴트로 1년 반을 일했다. 주3회, 그것도 하루에 4시간 일하는 파트타임이었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근무했다. 동시에 SNS활용 교육 등 자기계발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갔다.

그는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를 찾는 '후배' 구직자들뿐만 아니라 센터 직원들의 멘토가 되어주었다. 올해부터는 현장에서의 경영관련 근무경력과 컨설턴트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사로 활동을 시작한다. 연봉이나 직급보다 새로운 일에 대한 설렘으로 그의 하루는 오늘도 즐겁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 차원의 대책과 지원이다. 아무리 열심히 연습을 했더라도 무대가 없으면 공연을 할 수가 없고, 운동장이 없으면 달릴 수가 없다. 베이비부머 중장년 개개인의 노력에 맞춰 사회의 고용 시스템과 인프라가 구축돼야만 한다.

한국고용정보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장년 고용사정이 악화되고 있다. 2019년 8월 현재 베이비부머(1955∼1963년 생)는 723만명인 가운데 고용률은 66.9%다. 베이비부머의 고용률은 1955년생이 만 55세가 되던 2010년을 전후로 뚜렷한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올해 1960년 생 등 베이비부머 은퇴가 가속화되고 있어 이들을 위한 재취업 방안이 시급하다.

제주도에서는 지역에 맞는 신중년 적합 직무를 계속해서 발굴하고, 경력을 활용한 일자리 사업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맞춤형 직업훈련이나 일경험을 할 수 있는 일자리지원 사업들이다.

경제 불황의 그늘이 깊다. 그래도 양준일처럼, 내려놓으면 그곳에서 희망을 만들어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2020년에는 일자리가 늘어나 구직자가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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