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복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삘릴리 삘릴리 /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 / 바람 따라 도는 떠돌이 / 은빛 피리 하나 물고서 / 언제나 웃는 멋쟁이."

예전 7, 80년대의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이 노래는 큰 즐거움을 선사하는 대상 가운데 하나였다. 송창식이란 가수는, 나름의 독특한 발성과 만면에 웃음 띤 모습 하며, 통기타 하나 어깨에 둘러메고서 그 노래하는 난만한 모습이 누구나 쉽게 빠져들게 만든다. 설령 자신은 바람 따라 도는 떠돌이 신세라고 하지만, 그 노랫말에서처럼 멋쟁이로 불려도 그리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 '피리 부는 사나이'의 피리 소리가 특별한 마법의 신통력을 발휘한다고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예컨대 독일 태생의 작가 그림형제가 지었다는 동화, '하멜른(Hameln)의 피리 부는 사나이'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독일의 하멜른이란 곳은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마을에 걱정거리가 하나 생겨났다. 다름 아닌 쥐떼의 등장이었다. 고양이조차도 무서워할 정도로 이들 쥐떼군은 농작물에 피해를 줌은 물론 전염병을 옮기는 숙주 노릇을 한다고 익히 알려진 터였다. 더욱이 14세기 유럽 전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놓았던 흑사병의 고통에서 시달렸던 기억을 떠올리면 더욱 그랬다. 곧 그 쥐의 퇴치 문제는 온 마을 사람들에게 매우 심각한 현안이었다. 

그래서 이 마을 시장이 해결책으로 내건 건 돈 1000냥의 시상금이었다. 좀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던 참에, 어느 날 이 문제를 해결하겠노라고 나선 이가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가 쓸 술책이라고 내놓는 건 허리춤에 찬 피리를 가리키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가 거리로 나와 피리를 연주하자, 수많은 쥐떼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왔다. 그가 피리를 불며 인도하는 대로 강가로 따라가더니 결국 모든 쥐들이 물에 빠져 죽게 되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의 태도와 생각은 처음과는 사뭇 달랐다. 그 쥐떼가 어쩌다 실수로 강물에 빠져 죽은 것이지, 그 피리 소리 때문이 아니지 않느냐 하는 투였다. 그러면서 결국 당초 약속한 1000냥의 시상금도 건네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잠시 후 이 사나이는 거리로 나가 다시 피리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피리 소리를 듣고서 이번에는 그 마을 어린 아이들이 떼 지어 따라 나섰다. 사나이와 아이들이 언덕 쪽으로 향하더니 맨 마지막 아이까지 들어가자 언덕은 굳게 닫히고 말았다. 그 뒤로 사람들은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오면 돈을 주겠다고 회유했지만 결국 그 피리 부는 사나이와 아이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비록 먼 이국의 동화를 통해서이긴 해도 지도자의 신뢰감과 실천력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새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피리 소리의 신통함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다. 바로 신라 신문왕(神文王) 때의 일로서 '만파식적(萬波息笛)'이란 고사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피리를 수식하는 표현이 예사롭지 않다. 바로 '일만 가지 파고(波高)를 멈추게 하는 피리'란 뜻이 담겨 있어서다. 이의 자세한 내용은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공통으로 실려 전한다.  

신라 제31대 왕인 신문왕이 어느 날 동해에 나가 일관 (日官)으로부터 보고를 받길, "동해 가운데 작은 산이 떠다니고 더욱 기이한 일은 그 산 위에 대나무 한 그루 가 있는 데, 낮에는 둘로 나누어지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지나이다."라고 했다. 왕이 이를 이상히 여겨 몸소 그 곳까지 찾아가 용에게 연유를 알아본즉,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릴 좋은 징조이니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화평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즉시 그 대나무로 악기를 만들어 불었더니, 바로 적병이 물러가고, 질병이 쾌유되며, 가뭄에도 비가 내리고, 장마 때에는 맑게 개며 바람이 자고 물결이 평온해졌다. 그래서 이 악기를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불렀다고 한다.

여기서 둘로 나누어진 대나무가 하나로 합쳐짐의 현상이란 곧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음악의 조화를 상징한 표현인데, 내면적으로는 죽어서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신문왕의 부친)과 천신(天神)이 된 김유신의 합작으로 말미암아 나라의 모든 근심이 사라진다고 보는 시각과 상통한다.

세상이 온통 중국 우한(武漢)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사태와 관련된 이야기 일색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것도 유독 대구와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펼쳐진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곳이 어떤 곳이었던가. 그 옛날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신라의 터전에서 '만파식적(萬波息笛)'이란 전설을 꽃피워냈었다. 바로 그러한 역사적 배경을 떠올려 보면, 오늘의 난국도 얼마든지 헤쳐 나갈 지혜가 발현될 것이란 기대 섞인 희망을 가져봄직도 하다. 

이제 얼마 없으면 4 · 15 총선이다. 수많은 선량(選良)들의 후보군 속에서 진정 우리 국민을 화합과 안정으로 이끌 참된 지도자와 만날 수 있길 고대해본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두고서 이 시대의 진정한 '피리 부는 사나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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