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경칩과 춘분이 지나고 봄의 한가운데로 접어들었다. 봄비가 내려 얼어있던 얼음이 녹아내리고, 새 보금자리에서 겨울을 지낸 철새들도 먼 땅의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잠든 나무를 흔들고 묵은 것을 날리는 꽃샘바람이 불면서 만물이 생동해야 할 시간이 왔다. 

그렇지만 올해는 어쩐 일이지 모든 것이 우울한 봄이다. 온갖 꽃들이 화려하게 만발하여 봄 처녀를 유혹하고, 여름의 짙은 초록을 준비하기 위한 연두가 한창이고, 강남 갔던 제비들도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올 시간이지만 모든 것이 잔뜩 움츠려 침울하다. 그나마 산책길의 오름 언덕배기에서 모습을 드러낸 복수초들이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아기같이 철없이 방실대며 웃고 있다. 

삶을 새롭게 생각해 볼 시간

움츠리고 있는 것은 자연만이 아니다. 사람들의 일상도 모두 흩어지고 파괴되었다고 아우성이다. 신학기가 되어도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 그 많던 모임에도 참석할 수 없는 사람들,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떠나지 못하는 여행애호가들, 선거가 눈앞에 다가왔음에도 꼼짝 못 하는 정치가들 모두가 새삼스레 일상의 소중함을 느낀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우리의 삶은 너무 외부지향적인 것이 아니었나 싶다. 삶의 깊은 의미를 생각해 보고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반성의 시간을 가질 여유도 없이 우리는 열심히 살아간다. 그렇지만 요즘같이 힘들고 어려울 때, 바깥세상과 격리되어 자신을 되돌아보거나 그동안 읽지 못한 책이나 듣지 못한 음악을 다시 음미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또한 지금 우리는 왜 이렇게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봄을 맞아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100명의 세계적 석학이 뽑은 '20세기를 움직인 10권의 책' 중 4위를 차지한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아무도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던 40년 전에 봄이 왔는데도 꽃이 피지 않고 새가 울지 않는 미래가 올 수 있다고 예언한다. 카슨은 이 책에서 "만약 우리가 현재의 문제를 정확하게 알고 느끼지 못한다면 미래의 지구에 어떤 사태가 닥쳐올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자연에 대한 사랑의 마음 

인간은 과학과 기술에 대한 맹신에 취해 이 세상과 자연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 있다. 이러한 인간의 태도가 결국은 비극을 낳을 것이라고 작가는 예언한다.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영위해가는 아름다운 어느 마을에,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 뒤덮어 마치 저주에 걸린 듯 점차로 사람들이 생명을 잃어가게 된다.

마을은 봄의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이 사라진 죽음의 공간으로 바뀌게 되고 낯선 정적이 감돈다. 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이런 상황에 놀란 마을 사람들은 자취를 감춘 새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새들이 모이를 쪼아 먹던 뒷마당은 버림받은 듯 쓸쓸했다. 죽음처럼 고요한 봄이 온 것이다. 

이런 불길한 망령은 모두가 상상치 못하던 비극이지만, 지금 너무나 적나라한 현실이 되어 우리들의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다. 눈앞의 이익과 탐욕에 사로잡혀 인간이 저지르는 잘못은 동식물과 생태계를 교란하고, 그에 대하여 앞으로 인간이 치러야 할 대가는 더욱 참혹할지 모른다.

봄과 새와 꽃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을까. 미래의 인간이 이 세상에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공존의 마음을 가질 때에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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