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스탕달의 「적과 흑」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은 '문학에서 정치란 음악회 중에 쏘는 총소리와 같다.'고 한 적이 있다. 음악회에서 아름다운 연주가 흘러나오는데 총소리라는 불협화음이 들린다면 어떻게 될까. 제대로 된 음악 감상은 물론 음악회 자체가 진행될 수 없다. 

문학에서의 정치, 정치에서의 문학, 이 양자는 어느 모로 보더라도 쉽게 결합할 수 없는 상반된 영역이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둘 다 언어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정치가의 언어

문학은 언어를 통하여 인간과 세상을 표현하는 예술 장르이고, 정치도 언어를 통하여 대중의 감동과 호응을 불러일으켜 마음을 사로잡고자 한다. 그렇지만 문학을 하는 작가의 언어가 아름다움과 진실을 전달하고자 노력하지만, 정치가의 언어는 대중을 이끌기 위하여 호도하거나 선동하는 역할을 한다. 정치는 비록 국가와 민족 혹은 집단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할지라도 선동성을 벗어날 수 없다. 선동을 통해 대중을 설득시키고 이를 통해 자신이나 집단의 이익을 대변해서 이끌어가야 하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대중들의 사고를 혼란케 하거나 오도시킨다는 점에서 창의적이거나 진실성이 결여된 것일 수 있다. 또한 정치 언어는 선전 수단이나 목적이 되기 쉽고 문학 언어가 추구하는 거와 같은 예술성이나 진실성과는 본질을 달리하는 것이다.

언어를 정치 언어로 만드는 것은 그 언어의 철자나 형태가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와 내용이다. 대중은 정치 언어로 전달되는 언어 이미지를 통해 정치 현상을 지각한다. 정치인이 사용하는 정치 언어의 효과성은 그 정치인의 목적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당연히 정치 언어는 다소간에 강렬하고 과장되어 있다. 연주회에서의 음악 소리가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강렬한 파열음인 총소리를 이길 수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문학과 정치는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고 동질의 것일 수도 없다. 

진실한 사람 찾기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은 정치와 인간의 운명이 어떠한 관계를 맺는가를 다루는 소설이다. 정치 권력과 밀착하여 출세하고자 하는 주인공 쥘리앵 소렐은 비극적 삶을 살게 된다. 소설 2부의 첫 장면은 쥘리앵이 파리행 마차에서 두 승객의 대화를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소란한 선거' 때만 되면 서로 지지하는 정치가가 달라서 다툼을 벌이는 꼴불견의 풍경이 벌어진다.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국가란 배는 워낙 큰 돈덩어리이어서 정치가들은 서로 키를 잡으려고 싸운다.

쥘리앵은 평민 출신이었지만 프랑스 황제까지 된 나폴레옹을 존경했고 그와 같은 삶을 살기를 원했다. 작품에서 '적赤'은 나폴레옹과 같은 군인(정치가)을 의미하고 '흑黑'은 종교인인 사제를 의미하고 있다. 그 사이를 방황하던 주인공의 삶은 나폴레옹의 그것과 유사하게도 비참한 종말을 맺고 만다.

정치가들은 선거 때가 되면 듣기 좋은 감언이설을 늘어놓지만 선거가 끝나는 순간, 국민 개인의 운명에는 안중에도 없다. 정치가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진실과 허위를 쉽게 판단하기 힘들 정도로 현란하기 이를 데 없다. 

지역을 대표할 선량을 선출할 선거일이 눈앞에 다가왔다. 음악회에서 터지는 총소리와 같은 정치인의 언어는 전적으로 믿을 바가 못 된다. 누가 헐벗고 아픈 백성의 눈물을 닦아줄 진실한 사람인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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