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소방서장

지난 4월 29일 경기도 이천에서 발생한 물류센터 건설현장 화재로 38명의 소중한 생명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최근 각종 건설현장 및 물류창고 등에서 크고 작은 화재들이 빈번하게 잇따르는 가운데, 또 한번 이런 큰 화재참사가 발생하여 건축물 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우려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참사는 40명이 사망했었던 지난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때와 너무도 판박이여서 많은 이들에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2008년 1월 7일 발생한 이천 냉동창고 화재는 건물 지하에서 발포작업 중이던 우레탄에 섞여있던 시너와 냉매가스가 터지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불길이 창고 외벽 샌드위치 패널로 번지면서,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화염이 확산되어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가 발생하였다. 당시 소방당국 및 전문가들은 우레탄폼과 샌드위치 패널을 빠른 화재확산의 요인으로 지목하였다. 이번 이천 물류센터 건설현장 화재도 마찬가지다.

물류창고 지하 2층에서 시작된 불길이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질 수 있었던 원인의 중심에는 바로 샌드위치 패널이 있다. 샌드위치 패널은 특성상 화염에 취약한 중간 단열재가 철판으로 덮여있어 일단 불이 붙으면 열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온도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불이 급격하게 확산된다. 때문에 샌드위치 패널을 이용한 건물에 불이 붙으면, 화재가 급격하게 확산되는 플래시오버(Flash-over) 시간이 훨씬 빨리 도래하여, 소방관이 도착하였을 때 화재진압 및 인명검색을 위한 골든타임 확보가 어려워지게 된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센터의 통계를 살펴보면 샌드위치 패널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매해 3300∼3700건에 달하고 있으며, 그 유형의 피해액만 1500~2000억원에 이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화재위험성 때문에 관련 규제가 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샌드위치  패널은 다른 자재보다 훨씬 저렴하고, 시공기간을 단축할 수 있어, 여전히 신축 건설현장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건설현장에서의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작업장 내 위험 물질을 화기 작업 공정이 이루어지는 장소와 반드시 격리 보관하여야 하며, 화기 작업 후 일정시간(1시간 이상) 동안 비산 불티, 훈소 징후 등을 반드시 확인하는 관리·감독 활동도 지속적으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용접 등의 화재위험 작업이 현장에서 실시될 때, 사업자 및 안전관리자는 반드시 사전 작업허가를 하고, 직접 현장 위험성을 확인해 사전 안전 조치 의무를 이행해야 할 것이며, 화재감시자를 현장에 지정ㆍ배치해 가연성 물질이 작업현장에서 배제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 제주소방서에서는 이번 이천 물류센터 건설현장 화재와 같은 참사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예방활동의 일환으로 이달 집중관리 기간을 지정하여 연면적 3000㎡ 이상 공정율 50% 이상의 건설현장에 대해 가스·전기·건축 등 관련기관과 합동으로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건설현장에 필요한 임시소방시설 설치·유지 상태 여부 확인 및 기타 전기·가스 관련 화재안전에 대한 관리 사항 확인 등 화재안전점검 뿐만 아니라, 현장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화재예방교육 등도 병행 추진하여 다시는 유사한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선제적인 예방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의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오대산(五臺山) 위에 한호충(寒號蟲)이라는 새가 살았다고 한다. 매년 봄이 오면 새의 깃털이 눈부시게 아름답게 변하는데, 이때 그 새는 날개를 쫙 펴고 교만하게 "아 나는 정말 아름답다, 아름다워!"라고 노래를 불렀다. 가을이 오면 다른 새들은 추위를 피하기 위해 부지런히 둥지를 짓느라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유독 이 새만은 아무런 생각 없이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며 노래만 불렀다. 겨울이 오자 깃털이 모두 빠져 아름답던 모습은 사라지고 저녁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돌 틈에서 온몸을 덜덜 떨면서 밤을 보내야 했다. 그러면서도 아침에 해가 솟으면 한호충(寒號蟲)은 자신을 위로하면서 "오늘도 그럭저럭 지나가겠지, 오늘도 …득과차과, 득과차과(得過且過, 得過且過).."라고 읊조릴 뿐이었다. 이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평소의 평온한 시절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위험 신호가 있어도 괜찮겠지 하다가, 사고가 나면 그제서야 호들갑을 떨면서 얼렁뚱땅 수습을 하고선 또 잊으며 득과차과하는 한호충의 모습에서, 모두의 안전을 위해 우리는 과연 어떤 자세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위기(危機)는 위험(危險)과 기회(機會)라는 두 단어로 합성된 단어이다. 이번 화재는 반드시 가슴에 아로 새겨야 할 가슴 아픈 참사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이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안전한 제주의 미래를 설계하는 실천하는데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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