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형 취재1팀 차장

실리(實利)는 실질적인 이득이란 의미다. 실리는 바둑 용어 가운데 하나로 반상에 돌을 놓아 획득한 자기 소유로 확신할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세력'이 중앙 방면의 풍부한 가능성을 지향하고 있는 점에 비해 '실리'는 귀와 변의 작은 공간에 대한 확실한 이익 보장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상대 개념을 지닌다. 

명분(名分)은 이름이나 신분에 따라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란 의미다. 서로가 지켜야 할 도덕상의 일을 이르는 것이다. 또 명분은 일을 꾀할 때 내세우는 구실이나 이유 따위의 의미도 갖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말하는 명분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란 뜻보다 구실이나 이유 등의 의미가 강하다.

정치권에서 '명분'과 '실리'를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명분과 실리는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다. 명분을 위해 실리를 포기하거나, 실리를 위해 명분이 없더라도 강행하면 안 된다. 어떤 결정을 내리고 행동을 하는 이유(명분)는 본인이나 주변, 지역사회 등 누군가에게 이익(실리)이 되는 것이다.

제주도가 제1차 제주형 재난긴급생활지원금에 이어 제2차 지원금을 준비하고 있다. 도는 그동안 모든 도민에게 지급하는 '보편적 지급'이 아니라 중위소득 100% 이하 기준을 적용하는 '선별적 지급'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제주도의회가 지난 21일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하면서 '재난지원금을 모든 도민(전 세대)에 지급할 것을 강구하라'는 부대의견을 달았다. 지난 22일에는 도의회 더불어민주당·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기자회견을 열고 전 도민 지급을 요청했다.

원희룡 도지사는 전 도민 지급이라는 '보편적 지급'이나 중위소득 100% 이하 등 '선별적 지급'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원 지사는 제2차 제주형 재난긴급생활지원금 지급 기준을 세우는 데 자신의 정치적 명분만을 내세우면 안 된다. 제주 정치권는 도민의 실리를 위한 명분을 찾아 정책 결정자의 부담을 덜어줘야 할 것이다.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명분은 '이유'의 의미가 아니라 '신분에 따라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란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도지사 신분에 따라, 도의원 신분에 따라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 '명분'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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