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아라요양병원장·논설위원

오래 전에 '살아가면서 꼭 해야 할 49가지'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작가 나름대로 폭넓은 인생을 살아가려면 해야 할 일들 49가지를 왜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었다. 많은 부분 동감이 갔다. 필자는 평생을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자 했었기 때문에 대부분 해 본 것들이었지만, 그 뜻을 새롭게 알게 되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 중 4~5가지는 못 해 본 것들이었는데 특히 두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하나는 부모님 발 씻어드리기이고 다른 하나는 일기 쓰기였다. 부모님 발을 씻어드리면서 우리를 키우기 위해 부모님께서 얼마나 고생하셨는가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때 이미 부모님 모두 돌아 가셨으니 영원히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나중에 다른 어르신의 발이라도 씻어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일기쓰기는 몇 차례 했었으나 대부분 일 년을 넘기지 못 했으니 일기를 썼다고 할 수는 없다. 매일 매일 일기를 쓰는 사람의 삶이 과히 흐트러질 수는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그 글의 말미에 일기를 못 썼으면 자서전이라도 쓰라고 되어 있었다. 나중에 자서전을 써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의 삶도 정도(正道)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으리라는 논리였다. 그래서 일기는 못 썼지만 나중에 자서전은 꼭 써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그때부터 생각나는 대로 옛 일을 적어나가기 시작하였다. 다만 일기를 쓴 것이 아니었고,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잘못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사물을 보는 시각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어서 주저되기도 하였으나, 후배들에게 자서전을 쓰는 모범이라도 보여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진행하였다. 마침 고희도 다가오고 한마음병원 원장을 그만 둘 때도 되어서, 그 동안 언론에 기고하거나, 내 생각을 알리기 위해 썼던 편지글들을 모아 '큰바위얼굴을 꿈꾸는 소년'이라는 제목으로 2011년 말에 자서전을 펴냈다. 예상 외로 원고가 많아 필자 다음으로 제주도의사회장을 역임한 김순택 원장이 편집위원장을 맡아 편집을 총괄하였으며 오대수 스카우트 제주연맹장과 장주석 한마음병원 행정 부원장 및 송만숙 간호협회장이 편집위원으로 수고해 주셨다.

이번에 제주도지사를 역임하신 김태환님께서 팔순을 맞으셔서 45년 동안의 공직생활을 되돌아보시면서 '제주는 나의 삶이어라' 라는 제목으로 자서전을 펴내셨다. 어려웠던 환경을 극복하시면서 9급 공무원을 시작으로 도지사까지 오르신 제주도에서는 입지전적인 삶을 살펴보면서 우리 제주도에 있는 모든 공직자들께서 귀감을 삼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직 성실과 끈기로 도민의 존경과 사랑은 받아오신 나날들이 오롯이 담겨있어 많은 분들이 읽어 보셨으면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과거의 잘못이나 실수에서 교훈을 얻고 고쳐나가야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현명한 사람은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고, 보통 사람은 실수를 한 다음에 고치나, 어리석은 사람은 실수를 하고도 고치지 않아 같은 실수를 거듭한다고 한다. '쇠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도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보면 소 잃고도 외양간 고치지 못 하는 사람들이 예상 외로 많다. 특히 공직은 한 사람이 계속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임자가 실수한 것을 모르고 답습할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전임자가 자기가 했던 일을 꼼꼼히 적어두었다가 후임자에게 줘서 참고하도록 하면 좋으련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럴 경우 자서전 형식으로라도 자세히 적어 후임자들이 읽고 참고할 수 있도록 한다면 후배들에게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서전을 쓰려는 사람들은 서산대사께서 말씀하신대로, '눈길을 걸을 때는 뒷사람이 혼란하지 않도록 난행(亂行)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가슴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정치지망생들이 입후보할 즈음에 자서전을 출간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를 알릴 기회가 많지 않으니 그렇게 하는 것을 이해는 하나 그리 바람작한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정치를 끝내고 자서전을 쓴다면 훨씬 후학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요즘 정치하시는 분들이 정치가가 아니라 정치꾼으로 매도되는 경우가 많다. 부디 김지사님처럼 정치를 끝내고서 자서전을 쓰겠다는 각오로 정치를 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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