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 취재1팀장·부국장

‘봄’이라 한창 제주 지역 건설 현장이 멈춰섰다. 코로나19로 여기저기 ‘힘들다’소리가 나오는 상황에 어찌 된 일인지 일 좀 하겠다는 근로자들이 마지못해 현장을 떠나는 상황이 속출했다. 지난 2010년 이후 시멘트 가격 기습 인상이나 골재 공급 중단, 건설 경기 호황으로 물량이 달려 몇 번 멈춘 적이 있었다. 진통도 있었고, 시간도 걸렸지만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 차차선을 찾아 움직였다. 이번은, 뭔가가 달랐다.

겉돌았던 ‘협상’ 테이블

제주 도내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 운전자들은 지난 4월10일부터 안전운임료 현실화 등을 요구하며 두 달 가까이 파업을 이어갔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1월 도입한 최저임금 격인 '안전운송운임제'때문이었다. 벌크시멘트 운전자들의 과적과 과로 등 사고 위험을 최소화한다는 목적에 더해 운송운임도 26t 적재정량 기준 3만5949원(t당 1383원)로 지난해 기준 운임보다 12.2% 높게 조정했다. 민노총 소속 화물연대 제주지부 BCT분회는 그러나 국토부가 설계한 ‘안전운임제’가 섬 지역 특성을 감안하지 않았다며 운행하던 차량을 세웠다. 안전운임제에 따른 시멘트 운송 운임(1㎞당 최대 957원)이 단거리 운송 비중이 높은 제주 입장에서는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처음 제주지역 시멘트 공급 업체들과 협의를 통해 조율할 것이란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파업이 장기화하며 지역 건설업체는 물론이고 연관 사업체, 일용직 근로자와 주변 상권까지 고사 위기를 호소한 끝에 협상 테이블이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3차례 협상에도 구간별 운임요금에 대해 BCT 노조는 기존운임의 12%, 시멘트협회는 안전운임의 12% 인상안을 제시하며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시멘트협회의 직권 중재 요청에 따라 제주도가 월별 매출액과 운송거리·물량·횟수 등을 검토한 ‘안전운임 평균 21% 인상’안을 제시했고 무난히 받아들여졌다. 국토교통부에는 이번 실태조사 내용을 포함해 지역 특성을 반영할 것을 건의하기로 했다. 시멘트 수혈 속도에 따라 지역 현장들도 바쁘게 움직이게 된다. 일단 다행이다.

화가 엉뚱한 곳에 미치다

여씨춘추 효행담에 지어지앙(池魚之殃)의 이야기가 있다. 중국 송나라 시대에 한 왕이 진귀한 구슬을 찾기 위해 연못 바닥이 드러나도록 물을 모두 퍼낸다. 한바탕 소동에도 끝내 구슬은 나오지 않았고 대신 연못에 있던 물고기들만 애꿎게 죽었다는, 목적·생각과 달리 화가 엉뚱한 곳에 미치는 상황을 비유하는 사자성어다.

옳고 그름을 떠나 대립 구도가 심화하다 보면 감정싸움이나 소모적인 논쟁으로 치닫게 된다. 그동안 건설업을 중심으로 한 제주 경제계에서는 누구 편을 들거나 탓하기보다 어떻게든 일 좀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읍소해왔다. 두 달여 멈춰선 만큼 감수해야 할 피해가 크지만 어디 하소연하기도 어렵다. 다른 지역 사정들을 살피다 보니 또 다른 시멘트 바람이 불 거라는 조짐도 읽힌다. 예년보다 장마가 이르고, 폭염도 잦을 것이란 예보도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위축 상황도 오래갈 거란 전망이다. 답이 안 나온다. 물론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다. 협상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당사자 모두 만족 하는 접점을 찾는 일이다. 주의해 살펴야 할 것은 결과와 파장이다. 손에 쥔 숫자보다 더 중요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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