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미 편집국장

생각해 보면 경기가 어려울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아버지였다. 가장이라는 무게감이 두 어깨를 짓누르는 것과 달리 경기 변화를 가장 먼저 느끼고 민감할 수밖에 없는 존재여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IMF 구제금융을 받던 시절에는 고개 숙인 아버지를 다룬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조창인의 '가시고기'가 유독 많이 언급됐다. 주머니 여유가 없는 상황에도 공감 이란 코드로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결은 조금 다르다. 김정현의 '아버지'가 가정과 사회에서 설자리를 잃어버린, 당시 경제 위기와 가족해체 같은 시대 상황과 맞물리며 위로라는 단어를 끄집어냈다면, 조창인의 '가시고기'는 새끼에 대한 사랑이 유별한 가시고기의 습성을 인용해 부성애에 희생을 연결한다.

코로나19로 힘든 지금은 자기계발과 에세이, 경제경영 관련 도서가 상위권에 분포해 있다.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인생을 바꾸는'이란 접합점이 보인다. 긍정적으로 보고 싶지만 결론은 다들 어렵다로 모아진다. 주변을 둘러보기 보다 당장 내 앞이 급하다.

그때도, 지금도 힘들다. 다만 맞닥뜨린 상황과 속도에서 비롯된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설마 했던 조금은 안일했던 대응, 그리고 이전경제 충격의 경험 유무가 현재를 바꿨다.

코로나19 충격에는 '덮쳤다'는 서술어가 따라 붙는다. 심지어 경제구조의 가장 밑단부터 사정없이 흔들렸다. 실업자와 나홀로 사장 동시 증가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넘자마자 다시 실업자수 역대 최대 기록이 터졌다. 6월 제주지역 실업자는 1만5000명 선에 이른다. 4월과 5월 크게 늘었던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6월 5000명 정도 줄었다는 것은 그만큼 지역 경제가 입은 내상이 크다는 얘기다.

이럴 때면 경험이 아프다. 앞서 두 번의 위기 상황을 통해 대량 실직이 지역에 미치는 여파를 뼈아프게 배웠다. 그래서 이번은 고용유지 지원 이라는 장치를 작동했지만 이것 역시 완벽하지는 않은 상황이다. 일 없음 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고 복귀에 대한 걱정도 여전하다. 사업장수가 1년 전보다 줄어드는 상황까지 겹치면서 실업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사람이 필요하지만 뽑아 쓸 수 없고, 일이 절실하지만 어느 곳 하나 손 내밀 곳이 없다.

40·50대 실업자가 늘어나고 20대가 떠나는 현실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올 2분기를 기준으로 30~59세 실업자가 7000명대를 기록했다. 분기 기준 실업자가 1만2000명인 것을 감안하면 절반이 넘는다. 심지어 2010년 이후 최고로 많은 숫자다. 1분기 5000명도 많다고 했었다. 15~29세 실업자는 3000명으로 전분기보다 줄었지만 주당 취업 시간이 감소하는 등의 여건을 볼 때 마냥 좋아할 내용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올들어 제주에서 20대만 1268명이 순유출됐다. '제주로'를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사정 속에 이런 흐름은 우울하다. 3월까지만 해도 주민등록을 기준으로 568명이 순감소했다고 술렁였다.

유독 20대가 제주를 떠나는 것 만큼은 막지 못하고 있다. 아니 솔직히 막을 수 없는 현실이 아쉽다.

제주도의 포스트코로나 대응책을 보면서 한숨이 깊어졌다. 소비절벽과 실직 취업난, 가계소득 감소가 무작위로 반복되는 악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현재 어려움은 그저 예고편에 그칠 수도 있다.

가장이 흔들리고 기회가 사라진다. 이것을 단순한 성장통처럼, 전환기 홍역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될 일이다. 마음이 급한 것은 알겠지만, 지금은 숙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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