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미 편집국장

8월 한가운데 '내가 다르게 만들 수 있을까'가 뜻하지 않게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과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제75주년 광복절 발언 얘기다.

영화 '밤쉘'은 2016년 미국 폭스뉴스의 여성 앵커 그레천 칼슨이 미디어계의 거물인 로저 에일스 회장의 성 상품화에 맞선 실화를 다루고 있다. 공공연히 이뤄지는 성희롱과 성추행에 맞선 여성의 이야기다. 새삼스럽지 않다. 그 때도 힘들었고, 지금도 쉽지 않다는 공감에 유독 가슴이 간다.

"여자끼리 뭉쳐야 한다"는 칼슨의 외침을 동료들은 불이익이 두려워 묵살한다. 심지어 성이 다른 동료들 중에는 '사회적 아름다움'의 척도를 이해하라는 말도 나온다. 불리한 상황 속에서 칼슨이 세상 앞에 선 이유는 분명했다. "그런 행동을 멈추는 거요. 누군가는 말해야 해요, 분노해야 하고". 그 사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고, 누구 하나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에서 편이 생기고 정당한 권리를 인정받는다.

'누군가 입을 열면'이란 힘들고 높은 벽을 넘어선 결과다. 변화를 이끌 것이란 답을 쥔 것은 아니지만 진정성과 끊임없는 소통으로 답에 가까이 다가간다.

엊그제 원희룡 도지사의 '말'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75주년 광복절을 절대 잊을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방역지침을 어긴 시위로 얼룩진 상황까지 맞물리며 공분을 사고 있다.

발단은 김원웅 광복회장의 광복절 기념사다. 김률근 광복회 제주도부장이 대신 읽은 내용은 친일청산에 대한 힐난의 수위가 중앙 행사보다 높았다고 한다. 광복절이란 날의 특수성이나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 운동을 하겠다'는 노저팬 운동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상황까지 감안해 '작정했다'는 평가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어느 정도 수용할 것인지에는 개개인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자리'다.

제주 도민을 대표하는 자격으로 참석한 도지사의 입에서 "이런 식의 기념사를 또 보낸다면 경축식에 대한 행정 집행을 원점에서 검토하겠다"는 말이 나왔다는 것은 놀랍다. '치우친 역사관'이란 쟁점은 오히려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광복된 것을 기념하고 국권을 회복해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것을 경축하는 국경일을 특정 단체의 행사로 치부하는 것이 맞느냐는 말도 들린다. 김원웅 광복회장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면 그동안 적극적인 '소통'창구로 활용해온 SNS를 써도 무방했을 것을 굳이 비슷한 뜻을 가진 '제주도민' 앞에서 겁박에 가까운 표현까지 써가며 쏟아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언어가 정치도구가 됐을 때의 함정을 들출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정의, 통일 같은 언어도 차분한 의미론적인 검증 없이 진영논리 안에 갇히면 정쟁에 휘말리게 된다. 대중적 이미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치인들조차 이번 사안에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음을 살펴야 한다. 여론이라는 조용한 강요까지 옮길 생각은 없다. 

정치인의 언어는 사려 깊어야 하고, 무엇보다 균형감각이 있어야 한다. 정확한 의사 전달의 필요성은 중학교 교과서에서 배운다. 오해를 살 수 있는 표현과 소통의 중요성도 공유한다.

정치적인 것의 내용 전달보다는 이를 어떻게 그럴듯하게 포장하는가 하는 문제가 정치적 소통의 주제가 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가뜩이나 제주는 애써 밀어내면서, 자꾸만 멀리 보고, 혼자 가는 데 대한 불만이 쌓이고 있는 참이다. 흔히 쓰는 말로 '유감'이라거나 '아쉽다'는 표현도 있었다. 그러니 '관심'을 바라는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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