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라순력도」에 나오는 성곽의 모습(위). 사진 아래는 복원된 제주성곽. 위의 그림처럼 윗부분에 튀어나온 "여장"시설이 없다.<부현일 기자>
적의 습격에 대비해 흙이나 돌로 구축한 방어시설 성(城).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는 예로부터 3성(城) 9진(鎭)과 환해장성을 쌓아 외적의 침입을 막아왔다. 제주의 방어유적에 대한 보수정비는 지난 84년 정의성 보수정비를 시작으로 89년 제주성, 97년 명월진성에 대한 보수정비가 추진됐다. 이들 방어유적에 대한 보수, 정비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성곽들은 성(城)의 기본적 방어 구조물인 여장(女墻) 복원이 이뤄지지 않아 ‘반쪽짜리 복원’에 그치고 있다.

성가퀴, 혹은 타첩이라고도 불리는 여장(女墻)은 날아오는 적의 탄환이나 화살을 막기 위해 성벽 위에 낮게 쌓은 엄폐용 담이다.

성(城)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시설인 만큼 여장은 병사들이 효과적으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성의 또 다른 구조물이다. 여장이 없을 경우 성을 지키는 군사들은 적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원진의 「탐라지」에도 제주읍성의 경우 400여개의 여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문헌 기록에도 정의현성, 대정현성, 별방진에 각각 180개에서 240여개의 여장이 있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탐라순력도」의 ‘제주조점’‘정의조점’‘대정조점’에 그려진 성곽의 모습에도 여장 시설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하지만 문화재 보수 정비를 담당하고 있는 제주도는 현재 남아 있는 여장 시설이 없어 현실적으로 고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여장 복원을 외면하고 있다.

제주참여환경연대가 발간하는 「참세상 만드는 사람들」에 ‘역사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는 이영권씨는 “현재 복원된 제주의 성곽에 여장 시설이 없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라며 “여장시설이 없는 성곽 보존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제주문화재연구소 강창화 실장도 “현재 제주 성곽 복원은 복원이 아니라 사실상 신축이나 다름없다”며 “여장시설에 대한 고증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성곽을 보수, 정비하는 과정에서 원래 성곽 축조방식에 대한 학술적 고증조차 거치지 않고 있어 원모습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제주도 관계자는 “여장시설에 대한 복원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여장시설에 대한 고증이 쉽지 않아 복원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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